만일 어떤 친구가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세미나에 온라인 등록을 한 뒤에 마치 스쿠버 다이빙 일일 코스에 등록하면서 대왕쥐가오리를 목격하기를 기대하듯 그런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 이 친구를 열린 정신의 한 모범적인 예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순진하게 그런 헛소리를 믿다가 나중에는 실망하는 멍청이로 봐야 할 것인가......? 나는 정말이지 알 수 없었다. - P22
숨을 내쉰다는 것은 결국 마지막 바람을 돌려주는 것, 마지막 숨결을 돌려주는 것, 영혼을 돌려주는 것이다. 내 신경얼기 밑에 깃들어 있는 이 불안감은 죽음의 공포에 다름 아니며, 내 삶의 마지막 시간 동안 해야 할 작업은 바로 이것, 숨을 내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P86
내 삶의 표면 아래에서 어슬렁대는 그 공포를 명상은 길들일 수 있을까? 명상은 인간의 모든 경험들을 장악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게 넘어설 수 없는 관문들이 있는 걸까?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배반당한 사람들에게 명상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P97
음에서 양이 나오고 양에서 음이 나오는데, 한쪽 극과 다른 쪽 극 사이를 흐르는 물결에 조용히 몸을 맡긴다면 그 사람은 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광인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누군가가 물결에 몸을 맡기는 대신 그 물결에 휩쓸려 갈 때,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한쪽 극에서 다른 쪽 극으로 요동칠 때, 음과 양이 더 이상 상호 보완적이 아니라 둘 다 그를 죽이려 할 때 우리는 그가 광인임을 아는 것이다. - P225
내게 있어서 현실의 실제는, 나의 본질은, 이 모든 것의 최종 결론은, 와이엇 메이슨이 유쾌하게 말했듯 내 책들이 지향하는 그 침해할 수 없는 기쁨의 공간이 아니라 절대적 공포, 다시 말해서 영원한 암흑 속에서 그 의식이 돌아오는 네 살배기 꼬마 아이의 그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 P242
삶에는 그림자가 있지만, 또 순수한 기쁨도 있으며, 그림자 없는 순수한 기쁨은 불가능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 그림자와 더불어 사는 것도 괜찮다는 것이다. 순수한 기쁨은 그림자만큼이나 진실이라는 사실을 내게 말해 준 것, 이게 바로 에리카의 선물이었다. - P386
명상은 생각의 소용돌이에 휩쓸림 없이 그것을 관찰하는 증인을 자신의 내부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명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명상은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명상은 자신 속에서 쉬지않고 <나! 나! 나!>라고 말하는 어떤 것과 자신이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P.400-401) - P4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