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 칭함으로써 그 슬픔이 두 배 또는 절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죽음과 삶에 깃든 숱한 역설 중 하나에 속한다. 그와 달리 신원확인이 불가능하거나 실종자를 둔 가족들은 불안한 희망과 허용되지 않는 애도로 말미암아 혼란한 악몽에 갇혀 불행의 마무리는 물론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마저도 저지당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상실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인류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지만 불안하고 대체 불가능한 미래의 속성 또한 포함하고 있다. - P15

인류가 잃은 훌륭한 사상과 감동적인 예술품, 혁명적인 업적들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그런 것들이 누군가의 악의로 파괴되었는지, 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실되었는지 일일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어쩌면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미지의 것은 누구에게도 괴로움을 주지 않을테니까. 놀랍게도 적지 않은 근대 유럽의 사상가들은 문화의 주기적인 몰락을 납득할 만한 현상 또는 심리적 치유의 과정이라고까지 보았다. 그들은 마치 문화적 기억이라는 것이 원활한 신진대사 - 새로운 음식을 섭취하기에 앞서 이전 것의 소화와 배설을 마치는 - 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세계유기체라도 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들은 이렇게 좁고 자아도취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유럽이 아닌 낯선 지역에 대해 거리낌 없는 점령•약탈•군림•노예화•살인을 자행하고, 그들이 경시하는 그 문화가 소멸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이해하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자의적인 진화론의 공식을 따르는 범죄를 정당화한다. (P.18-19) - P18

모든 독재자는 시대를 초월해 신들에게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을 늘 새로이 욕망하는 듯하다. 그들의 파괴적인 설계 의지는 자신을 현재에 새기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미래를 통제하려는 자는 과거를 말살해야 한다. 자신을 새로운 왕조의 조상, 모든 진실의 근원으로 일컫는 자는 앞선 사람의 생각을 소멸하고 모든 비판적인 사고를 금지해야 한다. - P20

진화의 법칙은 어떤 개체가 특정 시간 동안 살아남는 것이 우연과 적응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호 작용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계몽주의적인 진보의 믿음이 거의 깨지지 않고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진하는 역사 연표의 단순한 매력과 이에 상응하는 서구문화권의 선형적 사고관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경향 때문에 신법神法이 의미를 상실한 시대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은 주어진 모든 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도와 (그럴 만한) 의미가 포함되었다는 자연주의의 그릇된 결론에 너무 쉽게 굴복하게 된다. - P24

마지막으로 다시 내 시선은 창백한 푸른빛의 지구본으로 향했다. 나는 재빨리 그 위치를 찾았다. 바로 그곳, 적도의 남쪽 흩어져 있는 섬들 사이에 이 완벽한 땅이 있었다. 세계의 외딴곳에. 그곳에 대해 한때 알았던 모든 것은 잊혔다. 그러나 세상은 알고 있던 것만을 애도하며 그 더없이 작은 섬이 사라짐으로써 대체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 짐작도 하지 못한다. 지구가 이 사라진 조그만 땅에 자신의 배꼽이 될 것을 허락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무역과 전쟁이라는 단단한 삭구가 아니라 비할 데 없이 가느다란 꿈의 실로 묶여있었다 하더라도. 신화란 모든 실제 중에 가장 높은 실제이기에 나는 잠시 도서관을 세계사의 참된 무대로 생각했다. - P52

우리는 아포시오페시스, 즉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말을 끊는 그 기법이 수사학적 제스처라는 것을 안다. 위-롱기누스 역시 숭고함에 대한 그의 저작에서 분명히 이에 대해 다뤘지만, 사서와 제본사 들의 부주의로 사라졌다. 말을 멈추는 사람, 말을 더듬고 머뭇거리기 시작하거나 심지어 침묵하는 사람은 압도적으로 밀려드는 감정 앞에서 반드시 말의 패배를 체험하게 된다. 생략부호는 모든 텍스트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나 기존의 단어에 투항하지 않는 감정들에, 규정되지 않은 거대한 감정의 왕국을 열어준다. (P.154-155) - P154

우리는 단어들의 의미가 기호처럼 바뀌는 것을 알고 있다. 오랫동안 점 세 개의 말줄임표(...)는 잃어버린 것과 미지의 것을, 언제부터인가 말해지지 않은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사라짐과 끝 저편의 열린 가능성까지를 표시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 세 개는 그것이 암시하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기를 독려하고, 생략된 것들을 상상하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묵살된 것들, 불쾌하고 외설적인 것들, 지탄의 대상과 사변적인 것들, 누락된 것들의 특별한 변주라는 근본적인 것을 표시하게 되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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