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신빙성과는 무관하게, 이처럼 불명확한 경우에 표절과 예상 표절을 단정 짓는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 텍스트이며 어느 것이 부차적인 텍스트인지, 또는 어느 것이 주主 텍스트이며 어느 것이 눈에 띄지 않고 영감을 받은 부副 텍스트인지를 생각해보는 방법이다. - P55

우리 소유의 것과 타인에게 속하는 것에 관한 문제는 작가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간주한 아이디어들을 도둑맞는 고전적 표절의 경우에도 이미 중요했다. 타우스크와 프로이트의 관계에서 이 문제는 한층 더 까다롭다. 왜냐하면 프로이트가 도둑맞은 아이디어들은 그것의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주장할 권리가 있을지는 몰라도 아직 딱히 그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는 모든 창작자가 그렇듯이 자신 안의 타인과,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부재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정신병의 영역에 속하는 경험을 생각하게 하는 대면이다. 왜냐하면 내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들이 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생각하는 것, 혹은 내가 생각한다고 믿는 것이 다른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면, 내 안에는 낯선 요소들밖에 남지 않으며, 그 낯선 요소들 가운데서 나의 정체성과 내 창작의 독자성을 간직하기 위한 길을 개척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 P99

우리가 보듯이, 예상 표절을 해명하기 위한 이 첫 번째 모델은 ‘아이디어‘라는 개념을 변화시킨다. 여기서는 텍스트만이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도 자체도 유동적이다. 아이디어가, 확실한 경계를 가진 내용이라는 형태의 생각이 아니라, 만져지지 않는 과정과 같은 것이 되면서 아이디어에 대한 소유의 문제는, 도용의 문제가 그렇듯이, 다르게, 그리고 한결 열린 방식으로 제기된다. - P102

이렇듯 영원 회귀에 대한 니체의 생각에도 공감하지 않고, 진짜건 가짜건 주어진 이런저런 표상에도 공감하지 않더라도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향함으로써 니체가 프로이트를 표절했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영원 회귀라는 개념은 형이상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결코 확실성을 갖지 못하지만 반면에 큰 미학적 타당성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과 사상의 역사는 반드시 선형적이지 않다. 그것은 순환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긴 간격을 두고 동일한 테마, 동일한 형태, 동일한 직관이 다시 나타난다. 그것들은 때로 새로움의 후광을 두르고 있지만 역사를 깊이 안다면 그 새로움은 부인된다. 이렇듯, 사람들은 니체처럼 전대의 사람들을 베낌으로써 후대의 사람들을 표절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흐르기에 대략 안심한다. (P.116-117) - P116

묘사적이고 설명적인, 순환적 시간개념은 창작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자연의 흐름처럼, 동일한 형태와 테마가 문학과 예술사에서 정기적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면서 미래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빨리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 미래의 발명에 가담할 수 있을 미학적 요소들을 과거로 찾아 나설 것을 부추기는 것이다. - P118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폴록의 등장이 막대한 수의 오브제들을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키는지 시간을 거슬러 확인한다. 예술 작품이 될 자질을 갖지 못했던 오브제들은 뒤늦게 그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예상 표절의 개념만이 이 시간을 거스른 예술 작품 영역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이 개념이야말로 작품들을 예술의 예측 불가능한 숱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무한히 유동적으로 만듦으로써 소급해서 그들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진짜 기계장치이기 때문이다. (P.172-173) - P172

회화의 예는 등한시할 수 없는 마지막 이점을 제시해준다. 예상 표절이 반드시 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단순히 시각적인 직감만으로도 실현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이점이다. 회화에서 폴록이 하게 될 일을 예감한 프라 안젤리코의 경우는 아이디어 도용이 어떻게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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