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 (합본) - 소설로 읽는 철학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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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처음 책을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엄청난 두께를 자랑했고, 철학이 이런 분량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덜컥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해소시키기 위해 소설이라는 장르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깊게 이야기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소설이 재미있는 것이 아니고 자칫 지루해져 흔히 말하는 '별로'인 도서가 될 수도 이었습니다.

다행히 소설로서만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초반부터 철학이라는 직접적 언급이 이어졌고, 이것이 소설이라는 사실은 그것을 알려주는 선생님과 대답을 하는 소피의 존재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물음과 가르침에 대한 대답을 하는 소피를 통해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탐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딘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가진 듯 대답은 꽤 귀여웠습니다. 그렇다고 그 내용까지 귀여운 것은 아니며, 충분히 생각해 볼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소피가 어린아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이따금 나오는 집중력을 확인하는 선생님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진행됨에 따라 드러난 열다섯이라는 소피의 나이는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귀엽게 대답하던 모습은 어쩌면 사려 깊은 태도와 정숙함, 깊게 생각하는 사고력을 갖춘 것에 대한 질투일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투는 갑작스럽게 화자로 등장한 힐데도 똑같이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더 심하게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 또한 노발리스의 어린 약혼녀와 같은 나이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나이의, 똑같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기에 그런 감정이 더 깊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둘은 이 소설이 말미에 다다르면, 평생 열다섯으로 남아 더 이상의 성장이 없는 운명입니다.

그런 면에서 소피가 조금은 더 나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소피와 다르게 힐데는 자신이 창조된 존재임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저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만 했습니다.

사실 소피와 선생님인 크녹스, 힐데와 그녀의 아버지인 크나그 소령은 서로에게 직,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창조한 세상의 인물이 현실로 오기도 하고,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기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써 온전히 존재했으며, 철학사와 철학가들에 대한 내용과 밸런스를 잡기 위해 힘들고도 흥미롭게 균형을 잡는 과정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철학과 소설 본문 내용은 짧은 호흡으로 유지되어 읽기 수월합니다.

또 시간순으로 철학자들과 철학사를 들려줌으로써 역사적인 느낌으로, 시간 속에 속해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몹시 흥미롭기도 합니다. 만약 내용 이해가 어렵거나 철학이 막연하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면 역사적인 접근으로 독서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끝까지 역사적 관점으로만 내용이 전개되진 않습니다. 신학적 측면이 나오기도 하며 이후 미술과 과학적 분야, 그리고 정신분석학, 마지막으로 천체물리학까지 확장이 됩니다. 이를 통해 철학이 근본적으로 여러 학문들과 밀접하고, 그만큼 우리와 아주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중 가장 높은 빈도는 신학적 측면입니다. 종교적인 명칭들과 어원이 다소 깊게 다뤄지며, 종교가 역사적으로 중대한 위치에 있고 그 아래에서 철학이 많이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엄연히 종교와 철학은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긴밀한 관계라도 조금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나 데카르트의 철학론은 무척이나 추상적이고 신앙심의 농도가 짙어 보였으며, 맹목적 신앙이 철학과 자신의 종교론을 과도하게 연결 짓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판단도 성급하게 내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새로운 철학적 논제들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끝이 없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서로 맞물릴 수 없는 것들이 무한하게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계속해서 쏟아지는 다양한 철학론 속에서, 본인에게 가장 적합하고 와닿는 것을 골라서 섭취하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소설 속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던 소피가 아니라 아직도 스스로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힐데일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전혀 모르고 사는 편이 삶을 사는데 더 유리하기에 일부러 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각자의 세상에서 온전하게 독립하기를 바라며,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 엄청난 분량의 내용에 압도 당할 수 있습니다.

단순 소설책도 그런 분량이라면 겁이 날 법한데, 철학이기에 더 두렵기도 합니다.

  • 소설의 형태를 취했어도, 근본은 철학이기 때문에 내용이 무겁습니다.

물론 호흡이 짧고, 소설과의 밸런스도 적절하지만 흐름을 늦게 탄다면 독서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 종교적인 색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와 깊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다소 과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 각 철학의 내용들이 생각보다 깊지 않습니다.

방대한 철학을 역사처럼 시간순으로 나열하기 때문에, 아무리 페이지가 많아도 담아내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맞는다고 생각하거나 궁금한 철학사를 따로 찾아봐야 합니다.


총 평

다양한 철학들을 역사 및 각종 학문을 통해 가볍게 다루지만, 사악한 분량 때문에 읽기가 꺼려집니다.

소설이 가미되어 있고, 밸런스도 나쁘지 않지만 소설에서 벗어난 내용들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다소 재미를 붙이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충실하게 철학들을 소개함으로써, 이들 중 자신에게 맞는다고 판단되거나 궁금한 철학사를 따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 번 보기에는 분량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에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8 구성 7 재미 7 재독성 5 표현력 8 가독성 7 평균 7)

소설과 철학의 적절한 밸런스를 갖춘 아주 두꺼운 소개서.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10356121



감상자(鑑賞者)

슬픈 사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지. 동시에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유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세상에 대해 놀라워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로 인해 무엇인지 근본적인 것을 상실하고 말았지. - P32

뭇사람들에겐 늘 자연의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런 설명 없이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과학이 존재하지 않던 그 옛날, 사람들은 신화를 지어 낸 것이다. - P47

그러나 이제 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앎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 P92

소피 스스로 느끼기에 예전의 자신은 색맹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그림자들만 보아 왔지 순수한 이데아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 P140

"엄마는 변하지 않으셨어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단지 발달했을 뿐이죠. 나이를 더 먹었구요······." - P154

때마침 세계가 새로 창조된 듯 뜰에선 새들이 지저귀었다. 낡은 토끼장 뒤쪽의 자작나무들은, 조물주가 아직 색 배합을 채 마치지 않은 듯 선명한 연초록색을 띠고 있다. - P205

"어차피 아무도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배운 적이 없잖아?" - P278

데카르트는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공간을 차지하는 이중적 존재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지. 그에 따르면 인간은 영혼과 공간적 육체를 모두 갖고 있다. - P349

한 예로 그는 윤리적 원칙은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로크는 소위 자연권 사상을 표방했다. 자연권 사상엔 합리주의적 특징이 있다. 아울러 로크가, 신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바로 인간의 이성에 내재해 있다고 믿은 것 역시 분명한 합리주의적 특징을 지닌 생각이다. - P382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뒤따라 생기는 사건들 사이에 꼭 필연적인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야.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않도록 경고하는 일이야. 특히 성급한 결론은 여러 가지 미신을 유발한다. - P401

더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성으로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신을 증명하거나 이성의 논증에 만족하면 신앙 자체를, 그리고 동시에 종교적인 간절함을 잃는다. 기독교가 진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진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지. - P555

때때로 우리는 합리화를 한다. 그러니까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행한 일에 대해 실제 이유와는 다른 어떤 이유가 있노라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지. 그 실제 이유가 너무도 수치스런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 P632

그러고는 다시 눈을 뜨고 계속 천장을 쳐다보았다. 결국 힐데는 눈을 뜨는 걸 잊어버리고 잠이 들었다.

​힐데가 요란한 갈매기 울음 소리에 잠을 깬 것은 6시 66분이었다. - P648

네가 사랑에 빠져 네 연인의 전화를 기다린다면 너는 아마도 저녁 내내 그 연인이 전화하지 않는 걸 ‘들을거다.‘ 바로 그가 전화하지 않는다는 걸 너는 내내 확인하는 거다. 네가 기차역까지 마중나가서 네 연인을 찾지도 못하고 플랫폼에 쏟아져 나온 한 떼의 사람들을 만난다면 너는 이 사람들을 전혀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방해가 될 뿐이고 너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 P665

그러나 세상에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마 우린 아직도 자연의 모든 법칙을 알고 있지는 못할 테니까. 과거에는 자기력이나 전기 현상 같은 것들이 일종의 마법으로 통했단다. - P680

케이크는 밑으로 갈수록 원둘레가 커지기 때문이지요. 우리 삶도 바로 그렇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소피는 아주 작은 원을 그리며 이 주위를 돌아다녔죠. 그런데 해가 바뀔수록 그 원은 점점 커졌습니다. 이제 그 원은 집에서 옛시가지까지 뻗어나갔습니다. - P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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