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상

푸른색으로 뒤덮여있는 표지는 강렬한 색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했습니다.

과거에 읽었던 도서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깊었고 진했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그것보다 더 풍부한 표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고른 도서였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의 목소리로 진행됐습니다.

먼저 들린 목소리는 그였고, 어쩐지 무기력하게 느껴졌습니다.

무기력하다는 느낌보다는 어딘지 그늘진 느낌이 진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색을 표현할 때는 다채로운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는 감성적이고 상냥한 사람이었겠지만, 무엇 때문인지 다른 감정을 갖게 된 것 같았습니다.

전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목소리는, 그녀를 만난 뒤부터 조금씩 변화해 갔습니다.

'나'와 주변인들 위주로 하던 이야기가 온통 그녀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등장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밝고 풋풋했지만 억지로 그런 모습을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본인이 갖고 있는 장애가 만들어낸,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양면의 모습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온통 '나'를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단 하루의 기억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 목소리는 빛의 표현을 다채롭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책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왔고, 각자 표현을 집중하는 대상이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둘은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갖고 있는 어둠이 다를 뿐, 결국 둘 모두 어둠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초반부터 드러나는 그녀의 장애는 너무도 뻔한 클리셰였습니다.

기억 상실과 관련된 영화나 책은 무수히 많았고, 이제는 익숙한 대상입니다.

그 안에서 어떤 슬픔이 드러날지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둠을 지녔음에도 밝고 긍정적이게 변하는 그의 모습도 어딘지 익숙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됐습니다.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예상 범주였음에도 흐르는 눈물이 클리셰가 왜 클리셰라고 불리는지 증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분기점이 된 부분은 '죽음'을 단 한 문장으로 짧게 표현한 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죽음 그 자체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닮아가던 둘의 표현이 더 강렬하고 안타깝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제3의 목소리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그 슬픔을 더 크게 느끼게 했습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감정을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덕분에 더 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서를 마무리할 때, 느끼게 된 것은 이 도서가 색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집중적으로 하는 대상이 다르긴 했지만, 결국은 모두 색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변화와 함께 다른 이들의 대상까지 같이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진한 색상의 표지와 벚꽃 색상이 있는 페이지로 포문을 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도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중요시해야 함입니다.

그것은 다가올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아직 오지 않은 기억을 미래와 함께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점

  • 다소 흔한 소재인 '기억상실'이 도서의 선택을 꺼려지게 만듭니다.

너무나 반복적으로 사용된 소재이기에 새로움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듭니다.

  • 특유의 문체 때문인지, 번역의 문제이지 다소 유치하게 대사들이 느껴집니다.

그런 느낌들은 어느 정도 지나면 익숙해지지만, 그런 것들에 끝까지 반감이 들 수 있습니다.

  • 약간은 다른 문화권에 따른 이질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내의 이야기가 아닌, 해외의 학생들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휴대폰 사용이나 다른 물품들을 사용하는 게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총 평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를 이용한다고 했을 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깡그리 무시하며 우직하게 밀어붙입니다.

클리셰임이 분명함에도 감정을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색상 표현 등 풍부한 감정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과서 위주의 학습이 어떻게 명문대를 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익숙함이 만들어낸 산물일 수도 있지만, 손수건을 찾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도서 같습니다.


상세 평점

★★★ (주제 6 구성 6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8 가독성 7 평균 6.6)


감상자(鑑賞者)


상세내용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088048842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아직 불타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집으로 향했다. - P17

사람은 눈부시게 환한 빛을 받으면 그만큼 그림자가 뚜렷하게 부각되어 그림자에 사로잡혀 버리는 면이 있다. - P81

하늘을 올려다보자 빛이 소리가 되어 쏟아질 것처럼 날씨가 좋았다. - P101

가진 게 다정함밖에 없는 거야. 다정함 말고는 가질 수 있는 게 없는 거야. 그것도 분명 아주 어중간해서 자랑할게 못 되는 다정함. - P117

황혼은 어둠과 함께 때로는 우수를 가져다준다. - P195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이 떨렸다.
세계의 이면에는 잔인함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인간이 모를 뿐 잔인함은 사방에 몰래 숨어 있다. - P227

오늘도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나. 내일도 이대로 아무 일 없었던 척하며 도망칠 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고 가족의 갈등을 남긴 채. 어떻게 하면 되나. 누가 가르쳐 줄 수 없나. 제발 누가······. - P237

다시금 창밖을 내다보니 여름날 오후 다운 새하얀 햇빛이 가득했다.
풍경은 꼭 변덕스러운 화가의 캔버스 같다. 어제까지 싱그러운 푸른색이 시야에 펼쳐져 있었건만 지금은 새 물감으로 덮여 있었다. 풍경이 덮어쓰기 되어 있었다. - P251

여름의 끝을 장식하듯 주홍빛을 서서히 잃어가는 하늘 아래 축제 장소가 화사한 색을 발하기 시작했다. - P259

하지만 오늘의 나는 오늘 하루만의 나다. 오늘이라는 이날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 P258

제발 남는 게 있기를.
지금의 이 감정이 내일의 나에게로 이어질 수 있기를. 잊지 않기를.
"잊어버리기······ 싫어."
어느새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시야가 부옇게 번졌다. - P266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나는 한동안 인간 불신에 빠졌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의논할 수 없었다. 내 상처는 스스로 고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고독한 동물이었다. - P281

가미야 도루가 심장 돌연사로 죽은 것은 그다음 날 밤이었다. - P308

울지 않네, 강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감정도 덩달아 비애의 색으로 짙게 물들려 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 P326

인공 불빛을 밝히지 않은 방에 달빛이 비쳐들었다.
나는 정적 속에서 뭔가를 기억해내고 싶었다. 기억해내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 P347

언젠가는 과거의 일부가 될거야. 어떤 상처든 한번 입고 나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 상처는 기익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픔이 계속되진 않거든.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 P355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즐기고 때로는 괴로워하며, 그것도 모두 평온한 일상 속에서, 밤에 잠이 들면 내일이 찾아온다. - P3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