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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시절, 큰 원안에 하루의 시간 계획을 짰던 기억이 나는가? 7시 기상, 7시부터 8시까지 세안 및 식사, 8시~10시까지 탐구생활 풀기, 10시~11시 놀기, 11시~12시 독서하기, 12시~1시 점심, 1시~2시 공부하기 등 지키기 힘든 24시간 계획을 빼곡빼곡 그려넣으면서 방학을 하고 하루 이틀은 좀 지키다가 작심삼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시간표에 따라 생활하는 학교 수업도 힘든데, 어떻게 어린 학생이 자기 스스로 그 하루 생활 계획표를 지키면서 살아갈 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한참 놀아야 할 때에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집어 넣었으니 실질적으로 되기는 몹시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은 어떤가? 하루에 8~10시간정도 일하고 퇴근하여 피곤함에 지쳐서 그냥 빈둥거리면서 누워 버리거나, 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 하지 못하는 것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시간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어떤 한 인물은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방대한 업적을 남기었다. 그는 만인이 알만큼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저자가 그에 대해서 연구했듯이 이 사람의 삶의 방식은 참 독특하고도 본받을만한 점이 있으며, 오히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의 삶이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게 도었다. 그래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에도 나와 있다시피 류비셰프라고 하는 이 러시아 출신 학자는 철저한 시간 관리와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능성의 최대치를 사용하고자 했으며 생전에 70권의 학술 서적을 발표했으며 총 1만 2,500여 장에 달하는 논문과 연구 자료를 남겼다. 그는 이론적인 분석과 권위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연구와 논쟁을 강조했으며 전공인 곤충 분류학과 해부학은 물론 유기체의 형태 및 체계, 진화론, 수리 생물학, 유전학, 심지어 분산분석 등에 걸쳐 방대한 저서를 남기며 20세기 러시아 과학사를 견인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비밀은 바로 시곕계에 있었다.
류비셰프는 그가 26세였던 1916년부터 일기를 시작해 1972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일기에서 특이한 점은 바로 시간을 기록했다는 점이었다. 1964년의 일기를 잠깐 살펴보도록 하면 이렇다.
1964년 4월 7일, 울리야노프스크
곤충분류학: 알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 3시간 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 20분
추가 업무: 슬라바에게 편지 - 2시간 45분
사교 업무: 식물보호단체 회의 - 2시간 25분
휴식: 이고르에게 편지 - 10분
울리야노프스카야의 프라우다지 - 10분
톨스토이의 세바스토폴 이야기 - 1시간 25분
이렇게 세세하게 시간을 기록하고, 매월 말마다 합계를 내고, 그래프나 표로 분석했으며 연말에는 월말 합계를 바탕으로 연간 총계를 계산하고 결산표까지 만들었다. 솔직히 가능한 일일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으며, 이렇게 시간을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또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일기를 보고 절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또한 그는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했으며, 책을 읽을 때도 항상 꼼꼼하게 읽고 정리를 해놓고 그것을 모두 자기 자신의 방대한 지식창고에 집어 넣었으며, 시간 통계를 바탕으로 다음 해의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화 예술생활 횟수와 느낀 소감을 세세히 기록했다는 점도 주목할만 했다. 사실 나도 내가 올해 몇 개의 영화를 봤고, 문화 생활을 몇 번이나 했는지조차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책을 몇 권 읽었는지는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알고 있고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때문에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있다는 것과, 가계부를 쓰고 있어서 지출을 짐작하고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 뿐만이 내 기록의 전부라서 그의 시간 통계 방법을 내게 맞추어 몸에 익히면 허투루 흘러나가버리는 내 시간을 통제하여, 내 재능을 발견하고 능력을 최대치로 올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작가가 말하다시피, 류비셰프는 행운아도 아니었고 그에게도 불운했던 시절들이 있었으며 그에게도 단점이 다 존재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아들들을 잃었거나, 박사 자격을 박탈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 여러가지 병마에 시달린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 주목해야 할 점은 역시 제목에 나와있다시피 "시간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다른 이의 주장에 대한 포용력, 자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분석해 기꺼이 대면하는 용기, 학문에 대한 개방적 사고, 강한 의지와 실천 정신, 창의적인 독서 방법 등도 배울 수 있다.
시간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어떤 꿈이 있을 때, 목표가 목적이라면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은 꿈 혹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가지 수단, 즉 길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방법이 조금 가혹해보이고 실천하기 어려워 보이더라도 한 번쯤 해보고, 불필요하다 싶은 과정은 자신에 맞게 조정해가면서 시간을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가계부도 기록을 해야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는지 눈에 보이고, 일기도 써놔야 훗날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앞날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록은 참으로 위대하다 여긴다. 내가 어떤 일에 얼마나 시간을 쓰는 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짜투리 시간도 잘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만이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 단 한 번뿐인 내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으리라.
천재적이고 기이했던 어느 한 과학자를 통해서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고, 삶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추천해 준 엄마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