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장류진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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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에세이 #소설 #핀란드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장류진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적어도 서점에는 에세이로 분류되어있다. 15년 전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핀란드로 리유니온(친목 모임)을 떠난 작가와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에세이는 -에세이인데!- 재미있게도 <치유의 감자>란 제목의 짧은 소설로 시작한다. 


"핀란드 쿠오피오의 교환학생들은 대부분 렌트가 저렴한 공동주택단지에 살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처음엔 작가가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럴 것이지만, 어떤 의심이 들었다. 실제 경험을 소설화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정체성이 사실은 소설이라는 것을 능청스럽게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에는 왠지 함께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 대한 감사와 소회 같은 게 있어야할 거 같은데 -내 편견일 수 있겠지만- 작가의 또 다른 소중한 친구의 또다른 여행에서 나눈 이야기와 작가로 활동하며 있었던 이런저런 경험으로 채워져있다. 독자를 자꾸 에세이 바깥으로 던지려고 하는 거 같다는 느낌이었다. 등장하는 인물은 가명이라고 밝힌 것이나 우리라나에서 런칭을 욕심내는 브랜드를 가상으로 만든 것이나... (훗날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다음 직업으로 수입상을 꿈꾸고 있으므로 -내 아이템을 뺏길 수 없지!- 품목과 브랜드명을 바꿨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이렇게 가정해보자 소설로써의 이 글도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인 듯, 에세이가 아닌 느낌의... 여행에세이를 빙자한 소설. 책 곳곳에는 현실(사실)에 입각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과 세계의 일부는 작가가 바꾼 것이다. 이것들 외에도 작가가 교묘하게 숨기거나 비틀어놓은 '진짜가 아닌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읽었던 내용들을 짚어나가다보니 이것이 소설일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가 될만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나는 저 유리벽 너머 코트 안에서 빠델을 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앱에 접속해 코트를 예약하겠지, 그리고 먼 저 맛있는 브런치를 먹으러 시장에 갈 거야. 유리벽 안에서 빠델을 치고 있는 어떤 사람은 헬싱키에 살고 있는 버전의 나, 다른 유니버스의 자신이다."

279~280쪽


여러 버전의 '나'를 만들어내다 보면 점점 더 나로부터는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이어 이것이 자신의 소설 쓰기의 비밀이라고 밝힌다. 엄청나게 참신한 설정이나 대단한 세계관이 아니라 현실의 상황에서 아주 조금, 딱 한 발짝 나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281쪽) 이 에세이를 이렇게 읽으면 소설이라 불러도 되는 거 아닌가. 

또 뒤에는 실제의 자신이 소설에 얼마나 들어있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딸기우유에 딸기가 들어 있는 만큼'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고 답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딸기우유에는 딸기가 얼마나 들어가 있을까?


"우유갑을 돌려 뒷면을 보자. 거기 깨알같이 적힌 성분분석표를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딸기우유의 딸기 함유량은 0퍼센트이다. 한마디로 딸기우유에는 딸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음료수의 정체성은 '딸기'이고 실제로 맛도 딸기 맛이 난다. 딱 그런 식으로 내가 쓴 소설에 내가 들어가 있다."

389쪽


이 부분에 이르자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분류가 에세이이고, 그러면 독자들이 흔히 100% 작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이 글은 자신이 0퍼센트가 들어간 '에세이 맛'이 나는 소설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래 같은 문장도 있었다.


"'내게 있어 핀란드는 완벽한 휴양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세이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96쪽


이 책은 위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물론 다음 구상하고 있는 에세이가 이렇게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은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쓴 내용은 나의 의심이다. 


어찌되었건 에세이로든, 소설로든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재미있다. 여행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면 잘쓰여진 여행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써진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내 몸에 '기억된 감각'이 재생된다. 그래서 여행했던 곳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감각들이 -내가 여행한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을 간지럽히며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여행지에서 맡았던 냄새, 살갗에 닿았던 공기의 느낌, 색깔 같은 감각이 저절로 떠올랐고 좋은 여행에세이를 읽었다는 마음에 흡족했다. 

윤슬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헬싱키 오디도서관에 가보고 싶어졌다. '뉴런을 공유하는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보게했고, 이정도는 해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도 했다.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해준 장류진 작가에게 감사한다. 


*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장류진 지음, 오리지널스(밀리의 서재), 416쪽,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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