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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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3년 말경 TV에서 올해의 책을 뽑아 독자에게설명하던 프로를 보던 중 제목도 독특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알라딘 홈피에 간간히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고 은근히 3류같은 책 제목에 비해 리뷰가 많아서 궁금하던 차에 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믿기로 하고 책을 읽었다.

우리가 늘 하던 말꼬리 장난같은 문장이 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흥미롭고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내왔던 암울했던 현대사를 풀어 놓는 이야기가 쏠쏠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유는 다르지만 내가 OB를 싫어하는 것 - 나는 순전히 OB의 골수팬들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싫다. 그들 앞에서 감히 OB를 욕했다가 여러번 죽음을 경험했다 - 과도 같다는 동질감도 있고...

문학의 권위자들이 둘러앉아 대단한 작품인지 아닌지 따질 정도의 책은 아니겠지만 잘 나갔던 OB나 삼성만이 허리가 부러질 정도의 프로가 아니듯이 이 한권의 책도 또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충족시켜주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일 것이다. 오랫만에 하하 웃으면서 책을 본거 같아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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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 SE [DTS] - [할인행사]
바즈 루어만 감독, 이완 맥그리거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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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의 유화 걸작 중 하나인 물랑 루즈 그리고 내 나름대로 뮤지컬 영화중의 걸작이라 칭하는 니콜과 이완 주연의 물랑 루즈

이 두가지 예술품은 특별한 연관은 없지만 적어도 만든이의 예술적 감각을 음미할 수 있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물론 전자는 온 몸이 컴플렉스 덩어리였던 작가가 환락가의 창녀들과 어울리며 불꽃같이 짧게 산화한 목숨과도 같은 예술작품이고 후자는 거대한 자본과 기라성같은 스텝들을 바탕으로 만든 상업주의적 작품이라 근본의 차이는 있겠지만...

각설하고, 만약 나보고 시카과와 물랑루즈를 평가하라면 시카고보다 이 작품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배우들도 좋고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함도 좋고 내가 아는 음악들도 많이 나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나를 울렸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섹시한 물랑루즈의 슈퍼스타와 가난한 작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불치병으로 인한 여자의 죽음 이런 진부하고 유치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난 울어 버렸다. 내가 영화에 몰입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런 진부한 스토리에 살을 넣고 옷을 입혀서 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영화 탓 때문이다.

이완 형님이랑 니콜 누님의 노래실력도 대단하고 그 노래라는게 창작이 아니라 기존의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는 것인데 그것 또한 절묘하다. 동화적 무대 장치로 화려한 색체의 영상미를 보여주고 있고 현란하게 진행되는 장면 장면들은 꼭 한편의 CF를 보는 듯하다. 예술 영화라기에는 너무나 통속적이고 자본주의적이지만 보고 듣는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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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1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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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교리 자체보다 불교가 가지고 있는 예술혼이라든지 심오한 동양 철학적 사고, 배타적인 타교에 비해 열린 마음에 이끌려 가끔씩 관련 서적을 구해 보곤 한다. <만행>도 그러한 나의 기호에다가 파란 눈을 가진 스님이라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가 더해져 안 사고는 못 베기게 만든 책중 하나이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총명한 하버드 출신이라는 이력을 뺀다면 여타 불교 관련 서적과 크게 다를바 없는 내용이지만 외국인의 눈을 통해 보는 한국 종교계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이나 외국의 포교 활동 상황 같은 좀처럼 접하기 힘든 내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읽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현각 스님도 겪은 이야기지만 간혹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광적인 교인들을 만날때가 많다. 공공장소라는게 무색할 정도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이교도를 잡아 낼듯이 눈을 부라리며 포교활동을 하지만 타인을 배려 않고 나에 반한다 하여 무조건 사탄으로 몰아간다면 그런 곳에서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모든 종교는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그것은 곧 타인을 존중, 배려하고 모든 것을 넓게 포용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물론 종교 자체의 비교는 어렵지만 파란 눈의 스님이나 검은 머리의 신부님이나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러한 편견들이 우리 인간들 사이를 더욱 더 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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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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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암살범의 손에 들려 있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되버린 소설, 영문과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자의적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읽었을 이 유명한 소설은 나에게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같이 지루하고 따분한 소설 중 하나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회 부적응자의 냉소적이고 삐딱한 사춘기 에피소드 이랄까? 물론 나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그러한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 특별히 부각되어진다든지 삶을 통찰하게 될 만큼 감동을 주고 있지는 않다.

왜 하필 호밀밭일까? 보리밭이나 옥수수밭이였으면 좀더 현실성이 있었을텐데 호밀이라는 나에게 생소한 단어가 주는 의미를 느끼지 못한걸까? 왜 한 아이의 미쳐가는 과정이 수 많은 사람들을 감동 시켰을까? 그의 냉소적이고 즉흥적이며 예민한 까탈스러움이 사이먼과 가펑클, 그린데이, 오프스프링, 빌리 조엘 같은 예술가들의 기행과 통했기 때문일까? 책을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나에게는 혹시나 나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하는 당혹감이 들게 만들 정도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을 출퇴근 버스에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그래서 내가 이해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절대 버스에서는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다시 읽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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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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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적부터 인간은 신들 속에서 신들을 경배하고 신들을 배신하고 신들을 의지하며 살아왔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수 많은 인간적인 신들로부터 야훼, 붓다, 알라, 짜라투스트라에까지, 이집트의 복잡하고 이중적인 자연신들로부터 하다 못해 거석이나 고목에까지 인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경외와 의지의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왔으며 또 지금껏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아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종교중 하나인 기독교에 관한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과 그 사람의 죽음을 추적해 나가는 형사 그리고 그 가운데 삽입되어진 아하스 페르츠에 관한 이야기가 주인데 많은 사람들을 혼란케 만드는 이야기가 바로 죽은 이가 쓴 아하스 페르츠에 관한 일대기 소설에 있다.

'아하스 페르츠' 무신론자(신념에 의한 것이라기보단 종교의 부정적인 측면에 실망해버린)인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퇴마록 말세편에서였다. 고대의 전설이나 신화 혹은 실제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이야기에 매끄럽게 삽입해버리는 재주가 뛰어난 이 우혁님의 책에서 아하스 페르츠는 신을 부정하고 예수를 조롱한 댓가로 영생불멸이라는 저주를 받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사람의 아들'에서의 아하스 페르츠는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써 그의 일대기가 혼란스러움과 함께 우리에게 전달되어진다.

예전에 신학대학을 나왔지만 목사님이 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분을 알고 있었는데 성경을 공부하다보면 신학을 포기해 버리고 싶을 만큼 커다란 모순과 접하게 되고 그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의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종교에 귀의함에 있어 선택적이고 상대적인 믿음이 아니라 운명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다만 이 소설이 지옥불에 떨어져야 할 것인지 아님 사실에 대해 깨끗이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인지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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