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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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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김지원이나 박완서 이후의, 나의 언니뻘이나 이모뻘 되는 여자 작가들, 그리고 내 동년배의 남자 작가들이 그리는 여자 이야기를 보면서 한결같이 느꼈던 것은, 같은 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이 나오기는 하지만.아, 이건 정말로 같은 느낌은 아닌데. 나랑 같은 생각은 아닌데. 이런 것들이었다.

세대를 초월하는 주제에 있어서는 특히 같은 여자로서의 삶을 그린 것을 보면 어쩔수 없이 동의하긴 했지만. 왜 이렇게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걸까. 그런생각이 들곤 했다. 더구나 같은 배경에서 그렇게 느낌이 빗나가고 있는 여자들이 나오는 남자작가들의 소설을 보면서는 이건 조작이거나, 오해일거야.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정이현의 소설은 달랐다. 부록때문에 억지로 산 패션잡지들이 화려하게 떠드는 외제 브랜드의 론칭 쇼, 유망직종등에 어느새 세뇌되어 어느새 선망하고 있던 직종의 사람들이 벌이는 이야기, '쿨하다'라는 말의 외부를 좇아가는 사람들과 그 외부가 끌어들이는 세뇌되는 내연, 남들이 보면 속물이고 앙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속이지는 않는 그런 여자의 내면들이 가감없이 그려져 있다.

독자인 내가 개인적으로 그 안에서 느끼는 것은 까발려진 자의식과 그로 인한 섬뜩함이지만.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이 소설이 독자가 많아질 요소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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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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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관촌수필>을 10년간 읽어오는데, 늘 그의 작품을 대할때면 같이 떠오르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니라 한승원씨가 쓴 이문구 작가론 중의 이문구 전용 어휘로 찍은 '...거였다'라는 말이다.

다른 말이 아니라 참말로 그 말이 이문구 작품의 모든 힘과 특징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아픈 가족사(인민위원장 경력의 '신화적 인물' 아버지를 감싸안고 쫒겨 떠돌며 생활해야 했던)와 시대의 변화로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사그라듦의 연속인 그 삶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하듯이 추려놓는 힘은 그 '거였다'라는 말끝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그런 부침많은 삶을 잠잠하게 과장없이 내어놓는 또하나의 힘은 선조로부터 이어져 온 글쓰기 방식--옛 선비들의 고문 창작-을 이으면서 온다고 본다. 파국을 위한 갈등구조를 차곡차곡 계산하는 '소설'이란 말을 여기 붙이지 못하고 '손가는 대로' 썼다는 겸손조의 '수필'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붙여 놓은 이유도 그의 '예의 염치를 아는' 양반자손으로서의 의식과 그 글쓰기 방식에의 고수라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기에 나오는 옹점이와 석수장이의 이야기를 읽고는 늘 울곤 한다.주변사람들에 대해 군림하지 않고 말없이 세심하게 살피는 '선비 지방관'(18,9세기 정약용등의 실학자가 자기의 정체성으로 설정한 '정체'인)의 남은 모습과 그 눈의 따뜻함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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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 - 허세욱 교수와 함께 읽는 중국 고전산문 83편
허세욱 옮겨엮음 / 학고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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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고전문학을 팔걷어붙이고 공부하다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학'이라는 것과 적잖이 다른 모습을 보여줌에 당혹할 때가 있다. 빵모자를 쓰고 다방에 앉아 담배를 피워가며 논해야 할 것 같은 '낭만적'인 시나 '재미'있는 소설 뿐 아니라, 정치적인 문서, 묘지명, 정책 보고서 같은 글들이 모두 '문학'이라는 이름 안에 옹송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어떻게 취급해야 할 것인가? 그런 글들(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런 것들을 '고문'이라고 부른다)을 대상으로 연구 논문으로 쓸라치면 '이것은 문학인가 아닌가'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 작품들을 보면 그런 고민이 없어지고 오히려 여기 담겨있는 형식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내용의 깊이를 어떻게 미적(美的)으로 설명해야 할 것인가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이 책은 그러한 고민을 소수의 전공연구자들 뿐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 옮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원문이 주는 한마디 한마디의 아름다움을 고민하며 옮긴 노력이 돋보인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중국의 고전 산문들을 옮기신 이 책 이후에 '여한십가문초' 같은 옛 우리 글들도 이렇게 옮겨주셔서 하루빨리 여러 사람이 일상 생활의 영역까지 깊이 스며들었던 문학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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