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지만 금복은 왠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가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 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이야기는 다시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던 가엾은 우리의 주인공. 춘회에게로 돌아간다. 그날 아침, 차가운 눈밭에서 싸늘한 아이의 주검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춘희는 아이를 골짜기 아래 작은 언덕에 묻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무덤 앞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었으며 더이상의 통곡도 없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그녀는 어두운 방안에 누워 곡기를 끊은 채 죽음을 기다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형벌을 더이상 감당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세 달이 넘도록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지만 그녀의 지독한 생명력은 스스로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뜻한 봄이 되자. 그녀는 죽음을 포기하고 다시 먹이를 구하러 섰다. 그녀는 더이상 트럭 운전사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을 떠나간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를 원망하지도 않다. 아니, 그녀는 자신을 임신시켜놓고 떠난 사내의 무책임과 자신의 고통을 연관지어 생각할 줄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서 고통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 P5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날 밤, 걱정은 뭔가 선뜩한 기운에 잠에서 깨어났다. 문밖에선 바람소리가 시끄러웠고 굵은 빗방울이 들이쳐 창호지를 연신두드려댔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환해진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또렷했다. 그는 비가 얼마나 오는지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마치 온몸이 결박당한 것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문득 자신의 하체를 내려다본 걱정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디가다리이고 어디가 팔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부푼자신의 몸을 본 그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 많은 살들이 어떻게 자신의 몸에 븥어 있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P1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물건이 하나씩 나 올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지만 금복은 왠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가 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 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 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몇 달이 흐른 뒤, 링컨 부인을 위해 옛 옷가지를 살피다가, 코트호주머니에서 똘똘 뭉쳐진 작은 벙어리장갑을 발견했다. 많은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작은 아이를, 아이의 착한 행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힐야드, 앞의 글 가운데
하녀 소피 레녹스의 이야기에서 - 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