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태어났을 때 바바준은 서른아홉이었다. 로야가 태어났을 때 남편은 서른일곱이었다. 로야가 지금의 남편 나이가 될 때면 남편은 여든넷이 된다. 여든넷이나 여든다섯이 나이를 뜻할 땐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아무리 적지 않다고 해도 준비를 하기엔 마냥 적은 것만 같고, 막상 준비하자니 미루는 편이 쉽고, 설사미룬다 해도 오늘이나 어제에 매이기 쉬운 게 삶인지라 시간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는 것은 그저 부질없는 일이다. 끝에 다다라서야 지난 세월의 장단(長短)을 가늠한다. 많음에 천연덕스럽게 안도하고, 적음에 능청스럽게 아쉬워한다. 사실, 남은 이들이 끝이라고 여길 뿐 떠난 이들에겐 시작이다. 존재의, 인식의, 변형이다. 육체에 갇힌 이생의 이들은 한평생을 보내도 준비하는 데는 서툴고, 미루는 데는 익숙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용한, 죽음이다. - P147
바로 다음 날이었다. 부활절 일요일이었다. 아이는 지난밤 부활절 토끼가 숨겨 놓은 달걀을 찾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음악회를 보고 난 우리는 한 치의 의심이나 주저함 없이 일찌감치 한자리에 모여 잘 구워진 베이비백립스를 짝으로 갖다 놓고 입가에소스를 묻혀 가며 신나게 뜯어 먹었다. 와인이 술술 넘어갔다. 웃음이 까르르 터져 나왔다. 눈물이 펑펑 나왔다. 웃으며 우는 나를보는 아이의 눈에 호기심과 안심이 섞여 있었다. 아이가 가진 깊고맑은 순수의 호수에 포옹이라는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었다.
‘떠나보내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
아이는 나를 꽉 안으며 내 소원을 품었다. - P160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야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지, 자두나무도 안다. 필연이 되기 위해선 땅에 심어야겠지. 그건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오늘 밤은 우주를 가로질러 볼 참이다. 어딘가에서 헤매도 그래 봐야 우주다. 내세상이다. -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