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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520/pimg_7553891601209353.jpg)
사람들은 그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아마 그들이 옳으리라. 그는 그 점을 결코 심각하게 반성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사회성이 없다'고도 했다. 오베는 이 말이 자기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싹싹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그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제정신이 아니었다. p.56
오베라는 남자가 있다
매일 6시 15분 전에 눈을 뜨고, 매일 아침 늘 정확히 똑같은 양의 커피를 사용하는 남자.
그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듯이 밤사이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모든 차고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뭐든 간에 발길질을 하면서 물건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남자.
모름지기 차는 사브가 최고이며 집이나 차를 수리하지 못하고 돈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의 허풍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
이 까칠한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융통성이 없는 남자'란 아내의 평가를 모욕으로 여기지 않았다.
세상에는 질서가, 반복되는 일상이 있어야 하고 그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로서는 그게 어떻게 못된 성질머리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로 전형적인 심술쟁이 늙은이 오베의 인생이 처음부터 이렇게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그녀를 보기 전까지 그가 사랑했던 유일한 건 숫자였다. 그에게 유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라곤 없었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따돌리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스포츠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중심에 있었던 적도 없었고 겉돌았던 적도 없었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성장과정도 그리 많이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딱히 필요가 없는 이상 무언가를 굳이 기억하려 든 적이 없는 남자였다. 그저 무척 행복하다가 몇 년 뒤에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기억하는 건 그 정도였다.
그는 산수 과목을 기억했다. 숫자들이 그의 머리를 채웠다. 학교에서 수학 시간을 무척이나 기다렸다는 걸 기억했다. 아마 다른 애들에게는 인고의 시간이었겠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 나름의 이유로 돌아가고 있은 세상일에 대해, 그 이유에 대해 왜 골똘히 생각해야 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이게 내 모습이고,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 오베에게 이거면 충분했다. p.57-58
오베였던 남자가 있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면서 옳은 건 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배웠고 그저 가능한 한 아버지와 많이 닮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아버지마저 죽었고 열여섯, 그는 원래 가족을 대체할 자기 가정을 꾸릴 시간을 가져보기도 훨씬 전에 가족을 잃은 독특한 종류의 고독을 경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는 오베에게 색깔인 그녀가 나타난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고 고맙게도 그녀는 오베 자신조차 모르는 춤추는 그의 내면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인생이 다시는 전과 같지 않게 되었지만 그녀마저 세상을 떠나고 그 주위엔 아무도 없다.
"보고싶어." 그가 속삭였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봐. p.55
세상 참 가혹하다
오베는 하나님과 우주와 기타 세상 모든 것이 이기도록 놔두려 하지 않는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
그는 평화롭게 죽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오베가 이기도록 놔두려 하지 않는다.
조용하던 그의 삶에 정신 나간 이란 임산부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멀대 남편 그리고 그들의 제멋대로인 아이들, 과체중 알레르기 환자, 동성애자, 기자, 고양이가 그의 집 대문을 거세게 두드려댄다.
오베의 죽는 날은 계속해서 미루어지고 있다.
오베는 작가가 애정을 담아 탄생시킨 인물이다. 『해리포터』에서 조앤 K. 롤링이 자신이 증오하는 인물을 사심을 담아 작정하고 만든 버논 이모부가 아니기 때문에 작가 자신이 아버지와 닮은 점이 많길 바라는 소망을 오베에게 적용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까칠함과 심술궂음이 마냥 밉지만은 않다. 과거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아내 소냐와의 만남에서 독자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고맙게도 오베도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변한다. 저런 사람이 사랑은 어떻게 하나 의심스럽지만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는 여자를 만났고 언제나 제 역할을 해내는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순정마초가 되고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가 된다. 어느새 그는 제멋대로인 이웃 아이들의 눈에 제일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컬러로 표현된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으로 -그가 츤데레라는 표현을 알 리가 없지만-보답하며 종래엔 유쾌함까지 보여준다.
『오베라는 남자』는 『밀레니엄』 시리즈 이후 두 번째로 만난 스웨덴 소설이었다. 두 소설의 공통점으로 한 나라 문학의 특징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두 소설은 닮은 점이 많았다. 두 소설 모두 캐릭터가 가진 힘이 굉장했고 세계 최고 복지 국가인 스웨덴의 이른바 '하얀 셔츠' 군단(사회복지기관, 시의회 등)에 대한 냉소도 끊임없다. 두 소설의 주인공인 오베와 리스베트는 누가 봐도 외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지키며 타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마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 같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고슴도치는 서로를 안아주지 못한다.
책장을 덮고 난 후 책꽂이의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오베에게 어느 자리를 내줘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대개 장르별, 국가별로 분류되어 있는지라 스웨덴 문학이란 이유로 『밀레니엄』 옆에 꽃아 두긴 했지만 오베와 리스베트, 미카엘은 서로 친구가 되지 못할 것이다. 리스베트는 시크하게 오베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고 오베는 그녀가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책꽂이 어느 자리를 내줘도 오베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책꽂이 주인에게 불평불만이 많은 까칠한 소설책이 생겼다. 이 책이 나를 조용히 그냥 지나치면 섭섭할 것 같다. 오베의 투덜거림이 더해질수록 칭찬으로 듣고 미소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