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에듀 2016 - 2016 대한민국 교육계를 뒤흔들 13가지 트렌드
이병훈 교육연구소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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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 되면 다가오는 새해의 미래를 전망하고 트렌드를 분석하는 책들이 나온다. 연말이나 연초에 서점에 들르면 꼭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만나볼 수 있는 분야의 책 들인데 그 대세를 잇는 트렌드 분야의 또 다른 책이 나왔다. 2016년을 맞이하여 트렌드의 범위를 교육으로 한정시키고 깊게 파고들었다. 이병훈교육연구소에서 2016년 원숭이해에 대한민국 교육계를 뒤흔들 13가지 트렌드를 예측하고 분석한 『트렌드 에듀 2016』

 

첫 번째로 제시하는 트렌드인 코딩 교육에 대해 살펴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코딩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게임을 하지 말고 직접 만들어 보도록 유도한 것은 알고 있던 뉴스다. 『트렌드 에듀 2016』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하여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에 힘쓰는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분석하면서 교육계의 변화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대비를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에 대책 없이 끌려다녀야만 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위한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입시 전쟁터에서 벗어나 이제 학생, 학부모, 교사의 신분이 아니더라도 코딩교육, 자유학기제, 플립 러닝, 특목고, 자사고, 국제학교 등의 단어들을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주 보고 들으며 접하지만 2% 정도의 정보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뭐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던 '이해찬 세대'였던 나는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뀔 때마다 크게 휘청거렸었다. 그 유명했던 '이해찬 세대'가 커서 현재 그 유명한 'n포 세대'가 되어서 우리나라의 교육이라면 회의감부터 드는 게 당연하게 돼버렸다. 입시 전쟁터에서 벗어난 이후로는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른바 '강남맘', '돼지맘'이라는 단어에 주눅부터 들고 우리나라 교육정책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책을 펼쳐들었지만 코딩교육, 자유학기제, 플립 러닝 등 우리 세대에서 경험하지 못 했던 새로운 교육방식이 흥미롭게 다가왔고 현재 입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신분이라 그런지 재미있게 읽히기까지 했다. 

『트렌드 에듀 2016』을 통해서 현재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교육방식과 외국의 교육 사례를 통해 세계가 원하는 미래의 인재상에 대한 추세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교육방식과 인재상을 보면서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문화에 대한 트렌드도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n포세대'의 시각으로 본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가르친다는 '반반 유치원'이나 1년에 5000~6000만 원의 비용이 든다는 국제학교는 많은 씁쓸함을 남겼지만 그건 이 책을 향한 씁쓸함이 아닌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열과 교육 환경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여전히 한국의 교육을 생각하면 회의감부터 들고 사교육 시장은 갈수록 커질 거란 확신이 들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13가지 트렌드가 실제 입시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더해진 숙제가 아닌 희망으로 다가오고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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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 - 진짜 연애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요조 (Yozoh) 외 지음 / 부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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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길고 긴 여름과 겨울 사이에 잠깐 스쳐가는 짧은 계절인데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고 단풍은 물들고 사람들은 독서를 해야 하고 가을도 타야 해서 자연도 사람도 분주하고 바쁜 계절이다. 또 달력이 한 장 넘어가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음에 대책 없이 공허해지는데 독서의 계절 가을에 가을을 타는데 완벽함을 더해줄 에세이를 만났다.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이 책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20명의 필자가 '연애소설'이라는 키워드로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금정연, 김민정, 김보통, 김소연, 김종관, 김중혁, 박솔뫼, 박준, 박현주, 배명훈,

백민석, 서민, 안은별, 요조, 이도우, 정성일, 정세랑, 정지돈, 주영준,  황인찬.

단풍보다 더 화려한 20평의 필자 리스트를 보고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긴 힘든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필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필자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분들이다. 최근에 작품을 접하게 되어 알게 된 작가가 있는가 하면 한때 나만 알고 싶은 작가였는데 이젠 너무 유명해져서 섭섭한(?) 작가가 있고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해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챙겨 읽는 작가도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이전 작품들을 부지런히 찾아보게 될 작가도 있다. 정말이지 나는 이 책이 구충제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엮은 책이라 해도 눈에 하트를 달고 읽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을에 연애소설에 관한 에세이라니 존재만으로도 마냥 고마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연애는 하는 것, 소설은 읽는 것, 시간은 필요한 것.

20명의 필자가 연애소설을 이야기한다. 자신들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고 연애소설을 이야기하며 많은 연애소설과 작가와 영화와 음악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을 펼쳐들기 전엔 그들이 들려주는 연애소설 리스트가 궁금했다. 오랜 덕질 덕분에 누군가의 리스트는 짐작이 갔고 단지 나와 동갑이라는 이유 하나로 누군가의 리스트가 특별히 더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동 중인 버스 안에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사이에,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 나는 이 책을 꺼내들었고 20명의 필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책과 영화가 궁금했고 내가 봤던 책과 영화가 새롭게 보였다. 그러는 사이 단풍이 예쁘게 물들고 가을비가 내리고 단풍이 떨어졌다. 

 

흠집이 난 구리 주전자 같은 사람. 사랑도 각인되고 상처도 각인되고 도무지 유연한 탄력성이라곤 없는 재질의 사람. 흠집이 난 구리 주전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고 버리려 할 때 기꺼이 그러라고 한다. 자존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구리 주전자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걸 과소평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납지 않은 고집스러움이 남기는 인상과 메시지를 우린 너무 쉽게 지나친다. 구리 주전자의 사랑법은 소심하지도 않고, 오래, 아주 오래 기다릴 만큼 강하기도 하다. 다만 그 강함이 반항보다는 인내와 기다림에 가까울 뿐. 그래서 사랑도 복수도 슬픔도 오래 기다려서 이룬다. p.133 이도우 「가스등이 어두워질 때」

 

 

박준 시인은 서점 대여 코너에 있던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처음부터 읽는 대신 앞서 책을 읽은 이들이 쳐 놓은 밑줄들을 먼저 읽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이 책에 언급된 연애소설들을 그렇게 읽어보고 싶다. 필자들이 인용한 문장들을 먼저 찾아 읽고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에서 들려줬던 이야기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야행」에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까지 그렇게 읽어보고 싶다. 나는 기꺼이 캐서린처럼 흠집이 난 구리 주전자 같은 사람이 되어서 이 책과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무수한 연애소설들이 주는 각인을 간직하며 살고 싶다. 연애를 하고 소설을 읽고 시간을 필요로 하면서 사랑과 상처가 남기는 각인을 간직하며 세계를 사랑하고 세계에 친절하고 연애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5년 가을, 나는 너무 쉽게 이 책과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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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일기 - 어쩌다 내가 회사의 가축이 됐을까
강백수 지음 / 꼼지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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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컨텐츠는 늘 존재해왔고 언제나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아왔다. '회사가기 시러쏭'은 백수 시절엔 미처 몰랐던 직장생활의 고달픔을 입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와 사실적인 가사로 동기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였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이 열풍을 일으킨 건 딱 작년 이맘때였다. 그렇게 성실한 신입은 없다고, 그렇게 따뜻한 상사는 없다고, 그렇게 완벽한 팀워크는 없다고 누군가는 미생을 판타지라 하기도 했지만 많은 직장인들의 뜨거운 공감을 이끌어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15년 가을 우리의 회사생활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사축일기』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은 무시무시하다. 가축이라니, 사축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다고 발끈해야 정상인데 너무나도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쉽게 수긍이 돼서 슬프다. 시인으로, 싱어송라이터로, 배우로 다방면으로 다재다능한 끼를 보여주고 있는 강백수 작가의 신작이다. 강백수 작가가 회사생활을 까발린다고 하니 평범한 회사원보다 예술가적 기질이 지나치게 높은 그가 지옥철을 경험이나 해봤을까, 업무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 더 힘들다는 걸, 업무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이 더 힘들 때가 있다는 걸 그가 이해할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다가도 어쩐지 그의 예술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까발려지는 우리의 회사생활이 궁금해진다. 

 

 

하루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옥철에서 내려 회사로 향하는 내 모습은 출근도 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상사를 보며 나는 나중에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는걸 배우고 있지만 사실 내 신세는 회사 비품만도 못하다. 다 같이 잘못했는데 이상하게 나만 깨지고 있고 이상하게 업무는 퇴근을 앞두고 밀려든다. 이건 분명 내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다. 내가 겪은 하루를 일기로 마감을 하면 내 일기장은 어느새 데스노트가 되어버리고 마는데 강백수 작가가 써 내려간 내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만 그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엄청난 위로가 된다. 

강백수 작가는 『사축일기』를 통해 그토록 기다렸던 급여일에 통장을 스치기만 하는 급여의 모습을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상어떼에게 습격당하는 모습에 비유하고 정직원이 되기 위해 견디는 인턴생활을 전래동화 『호랑이와 곰』에 비유하며 유쾌하게 풀어나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에 대한 고찰을 수학적으로 풀어내기도 하기도 하고 중간계 사축인 사수의 시점으로 회사생활을 풀어내기도 한다. 짧은 소설로 직장인의 현실을 무섭게 이야기하면서 (그렇다. 두 편의 짧은 소설은 공포소설이다)『사축일기』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역시 예술가는 회사생활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다. 동료의 칭찬과 조언이 아니꼽게 들리고 자판기에 갈 때마다 잔돈을 삥뜯어가는 동료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이야기는 이런 에피소드까지 다뤄줘서 내가 다 고마울 정도였는데 어느 소설 속의 한 구절처럼 말하자니 쩨쩨하고 숨기자니 옹졸해지는 무엇까지도 강백수 작가는 터놓고 이야기하며 간지러운 곳을 아주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직장인의 애환을 직장인보다 더 세밀하게 표현하는 강백수 작가의 글을 공감해서 읽다 보면 책을 읽기도 전 작가를 향해 가졌던 우려의 시선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지고 만다. 직장인보다 직장인의 심정을 더 잘 표현하다니 내내 감탄을 연발하다가도 나보다 능력 좋은 동기를 바라보는 심정처럼 내심 그가 얄밉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한다.

 

내내 피식거리고 읽다보면 나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위로가 되다가도 이 책이 마냥 공감이 돼서 슬프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을(乙)의 신분인 건가 싶어 쓸쓸해진다. 그러다 웃고 공감하면서 봤던 이 책이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물려받을 아버지 회사가 없는 흙수저인 내가 10년 뒤, 20년 뒤에도 이 책을 폭풍 공감하며 보게 될까 봐 무섭고 두렵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 대신 말해주고 싸워주면 고맙고 위안이 되는데 꼭 이 책이 차마 말 못 하는 직장인을 대신해서 말해주고 싸워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을 덮고나자 이 책을 직장인의 신분이 아닌 강백수 작가가 썼다는 사실이 고맙고 위안이 된다. 나 대신 말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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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할 수 있을까?
다카기 나오코 지음, 윤지은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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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하고 귀여운 그림의 만화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그림으로 그려낸 밝고 선한 캐릭터가 전파하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에는 대책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게 분명하다. 귀여운 그림과 공감이 많이 되는 생활툰이라면 몰라서 못보는 경우는 있어도 알고도 그 매력에 안빠지기는 힘든 일이다. 그런 내가 이제서야 우연히 다카기 나오코를 만났다. 그리고 당연히 그리고 순식간에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
 
다카기 나오코를 알게 된 건 이번 신작 『효도할 수 있을까?』의 출간 소식을 통해서였다. 동글동글한 그림과 부모님과 해외여행 하기라는 소재만 봤을 뿐인데 나는 또 한 명의 만화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커져만 가는 기대감은 신간 출간만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 작가와 나는 통하는 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미 출간되어 있는 그녀의 전작들을 부지런히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8년 전 아주 짧았던 나의 혼자 살기 시절을 회상하며 읽기 시작한 『독립생활 다이어리』는 나의 예감이 틀렸음을 알려주었다. 한 두 번의 도전이 번번이 실패로 끝나자 포기로 끝났던 요리, 나 자신을 알고 집 꾸미기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혼자 사는 생활과 달리 그녀는 요리도 인테리어도 아기자기하면서도 척척 야무지게 잘 해나가며 혼자 사는 생활이 주는 환상을 깨트리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의 독립생활은 여러모로 달랐고 좀처럼 그녀와 나는 통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기 나오코가 더 좋아지고 신간이 더 기대가 되었던 건 그녀의 이야기가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고 나를 반성하게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출간을 기다리는 신작의 주제는 '효도'였다. 효도에 관한한 공감보다는 자극이 더 절실한 나에게 이 책은 좋은 자극제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부모님과 여행이라면 경험이 많다. 분명 우리 가족은 다른 집에 비해 가족 여행이 많은 편이었고 그 기억들이 모두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음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가는 건 어떤 이유에서인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가족과 함께 비행기를 탄 경험조차 없다. 함께 국내 여행을 여러 번 했지만 제주도조차 함께 여행한 적이 없으니 '나오코 여행사'의 한국 여행기가 더 대단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부모, 형제, 자매와 함께 하는 가족여행이 아니라 작가 혼자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을 여행했다는 것이다. 혼자 가는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을 나눌 형제 없이 혼자 숙소와 식당, 여행 일정을 정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여행을 한다니 새삼 그녀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동글동글해서 마냥 귀엽게만 보이는 이 언니 알면 알수록 멋있다.
이 책은 부모님과 해외여행의 에피소드만 다룬 것이 아니다. 어렸을 적의 집안 풍경을 보여주며 독자들도 함께 향수에 젖게 하고 도쿄에 상경해 혼자 사는 딸의 집에 들른 아버지께 도쿄 구경을 시켜드리는 에피소드, 명절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풍경, 오래된 본가를 수리하는 문제로 풀리지 않는 가족 간의 갈등 등을 다카기 나오코 특유의 명랑함으로 그려 넣으면서도 따뜻하고 뭉클하게 풀어내며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나를 자극하기도 했다. 실버 세대라는 단어 하나에, 갈수록 작아지는 듯한 부모님의 모습에 대책 없이 울컥해지기도 하고 소주를 마시는 아버지께서 너무 취할까 봐 딸도 적극적으로 마셔 부녀가 기분 좋게 취하는 이야기에 유쾌해지기도 하면서 나오코 가족의 이야기는 나도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가서 추억을 쌓고 오겠다는 결심을 굳히는데 크게 한몫했다.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 가는 일에 근거 없는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고 시작조차 해보지 않고 무작정 겁만 먹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좋은 자극이 되었고 예방접종이 되어준것이다. 

 
이번 기회에 다카기 나오코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높은 기대에도 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이전 작품들까지 챙겨보면서 나는 그녀의 팬이 되었다. 이제 막 신간을 만났는데 앞으로 만나게 될 그녀의 후속 작품을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만나는 그녀의 작품들 속에서 그녀의 부모님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쪼록 본가 리모델링 문제가 좋게 해결됐으면 좋겠고 2020년 도쿄 올림픽 때의 나오코 가족의 이야기도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2020년에 나는 무얼 하고 있으려나? 뭐라도 되어 있어야 할텐데... 집안 정리정돈 에피소드 나오면 나오코 부모님과 공감하지 말고 나오코와 공감해야지. 그땐 아빠도 퇴직을 하시고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실 것이다. 그전에 꼭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다녀와야지. 효도할 수 있겠지? 효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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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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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라디오를 듣다가 해외여행을 가면 꼭 서점에 들러서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어린 왕자』 책을 사 와서 모은다는 어느 청취자의 사연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역시 나만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아니었는지 라디오 진행자가 다른 매체에서 그 사연을 다시 언급하기도 했었다. 청취자의 서재가 궁금하기도 하고 왜 나는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나 싶어 부럽기도 많이 부러웠는데 어느 나라의 서점에 들러도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어린 왕자』는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어린 왕자』는 한 번만 읽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 어린이 문고본으로 만났던 『어린 왕자』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글자의 조합이었던 것이다. 어린이인 나의 눈에도 모자로 보였던 그림이 사실은 모자가 아니라 보아 구렁이가 코끼리를 삼키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왜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어린 왕자』를 반도 넘기지 못하고 책장에 고이 모셔 두었고 오래 잊고 살았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어린 왕자』를 두고 어려웠던 책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는데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서 다시 어린 왕자를 찾게 되는 시점이 오는 것도, 다시 읽어본 『어린 왕자』의 문장이 이해가 되고 책장이 넘어가면서 밀려오는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도, 여러 번 읽을 때마다 그때그때 다른 인상을 받는다는 것 역시 나 혼자만 그러는 건 아니었다.

아직까지 어린이 문고본 『어린 왕자』를 읽고 있는 나는 제대로 된 『어린 왕자』를 사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어린 왕자』를 찾는 일이 나에겐 밤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처럼 느껴졌다. 『어린 왕자』를 출간하지 않은 출판사가 없을 정도로 서점에 가면 여러 종류의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고 고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이전에 빈번했던 파격적인 세일에도 예쁜 일러스트에도 혹하거나 휩쓸리지 않고 늦더라도 제대로 된 책을 사야 한다는 나만의 고집이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상이라도 내리는 건지 열린책들에서 『어린 왕자』가 출간됐다. 열린책들이라는 출판사 만으로도 큰 신뢰가 가는데 거기다 황현산 선생님의 번역으로 나왔다고 하니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끈질기게 기다린 '제대로 된 『어린 왕자』'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아주 늦게 그리고 힘들게 어린이 문고본을 졸업하고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읽은 『어린 왕자』는 여전했다. 소행성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는 사실 처음 출간됐던 73년 전이나 내가 처음 펼쳤던 20여 년 전이나 현재 2015년의 가을이나 변함이 없었다. 어린 왕자는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 그러니까 틀린 건 나다. 나는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리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알아보고 『어린 왕자』를 재미있게 읽었더라면 그리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어린 왕자』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된다면 나는 진작에 뭐라도 되어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참 이상한 어른에서 아무래도 참 이상한 어른, 아무리 봐도 아주아주 이상한 어른 그리고 확실히 이상 야릇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어딘가에 있으면서 가끔씩 생각이 날 때마다 찾아 읽었던 『어린 왕자』는 꾸준히 이상함을 업그레이드하는 어른인 나에게 항상 아주 너그러웠다. 명대사가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린 왕자가 여러 별을 여행하고 지구를 여행하며 마주한 어른들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반성문으로 다가오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어린 왕자』를 펼쳐 들었다가도 책을 덮을 즈음엔 자주 부끄러워졌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종내엔 이 책이 아주 무서운 인상을 남기며 읽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어린이 문고본이었으나 그동안 『어린 왕자』를 적게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린 왕자』에는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여전히 나는 사막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왕자』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른인지도 모르겠다. 시기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내가 구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어린 왕자』에 더 길들여져야 할 것이다. 의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간절히 길들여지고 싶다. 그토록 기다렸던 책을 손에 쥐고 큰 기대를 가지고 즐거운 독서를 했음에도 그동안 『어린 왕자』를 읽어왔던 지난 시간들이 비어 있는 것 같다. 『어린 왕자』에 따르면 내가 이 책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내가 『어린 왕자』에 소비한 시간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 길들여지고 싶었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린 왕자』를 길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길들인 것에 나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다. 나는 『어린 왕자』에 책임이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어린 왕자』를 찾을 땐 가벼운 마음이 아닌 책임감을 가지고 읽어봐야겠다. 그때 『어린 왕자』는 나에게 어떤 새로운 인상을 남겨줄지 기대가 되는 동시에 내가 『어린 왕자』를 온전히 다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무언가를 찾게 되는 그날이 오게 될까 봐 두렵다. 서른 초반에 더 이상 남들에게 읽는 모습이 들켜도 부끄럽지 않게 될(이제는 자랑까지 할 수 있게 된) 『어린 왕자』를 읽고 받은 나의 인상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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