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축일기 - 어쩌다 내가 회사의 가축이 됐을까
강백수 지음 / 꼼지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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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컨텐츠는 늘 존재해왔고 언제나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아왔다. '회사가기 시러쏭'은 백수 시절엔 미처 몰랐던 직장생활의 고달픔을 입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와 사실적인 가사로 동기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였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이 열풍을 일으킨 건 딱 작년 이맘때였다. 그렇게 성실한 신입은 없다고, 그렇게 따뜻한 상사는 없다고, 그렇게 완벽한 팀워크는 없다고 누군가는 미생을 판타지라 하기도 했지만 많은 직장인들의 뜨거운 공감을 이끌어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15년 가을 우리의 회사생활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사축일기』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은 무시무시하다. 가축이라니, 사축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다고 발끈해야 정상인데 너무나도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쉽게 수긍이 돼서 슬프다. 시인으로, 싱어송라이터로, 배우로 다방면으로 다재다능한 끼를 보여주고 있는 강백수 작가의 신작이다. 강백수 작가가 회사생활을 까발린다고 하니 평범한 회사원보다 예술가적 기질이 지나치게 높은 그가 지옥철을 경험이나 해봤을까, 업무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 더 힘들다는 걸, 업무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이 더 힘들 때가 있다는 걸 그가 이해할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다가도 어쩐지 그의 예술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까발려지는 우리의 회사생활이 궁금해진다. 

 

 

하루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옥철에서 내려 회사로 향하는 내 모습은 출근도 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상사를 보며 나는 나중에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는걸 배우고 있지만 사실 내 신세는 회사 비품만도 못하다. 다 같이 잘못했는데 이상하게 나만 깨지고 있고 이상하게 업무는 퇴근을 앞두고 밀려든다. 이건 분명 내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다. 내가 겪은 하루를 일기로 마감을 하면 내 일기장은 어느새 데스노트가 되어버리고 마는데 강백수 작가가 써 내려간 내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만 그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엄청난 위로가 된다. 

강백수 작가는 『사축일기』를 통해 그토록 기다렸던 급여일에 통장을 스치기만 하는 급여의 모습을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상어떼에게 습격당하는 모습에 비유하고 정직원이 되기 위해 견디는 인턴생활을 전래동화 『호랑이와 곰』에 비유하며 유쾌하게 풀어나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에 대한 고찰을 수학적으로 풀어내기도 하기도 하고 중간계 사축인 사수의 시점으로 회사생활을 풀어내기도 한다. 짧은 소설로 직장인의 현실을 무섭게 이야기하면서 (그렇다. 두 편의 짧은 소설은 공포소설이다)『사축일기』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역시 예술가는 회사생활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다. 동료의 칭찬과 조언이 아니꼽게 들리고 자판기에 갈 때마다 잔돈을 삥뜯어가는 동료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이야기는 이런 에피소드까지 다뤄줘서 내가 다 고마울 정도였는데 어느 소설 속의 한 구절처럼 말하자니 쩨쩨하고 숨기자니 옹졸해지는 무엇까지도 강백수 작가는 터놓고 이야기하며 간지러운 곳을 아주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직장인의 애환을 직장인보다 더 세밀하게 표현하는 강백수 작가의 글을 공감해서 읽다 보면 책을 읽기도 전 작가를 향해 가졌던 우려의 시선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지고 만다. 직장인보다 직장인의 심정을 더 잘 표현하다니 내내 감탄을 연발하다가도 나보다 능력 좋은 동기를 바라보는 심정처럼 내심 그가 얄밉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한다.

 

내내 피식거리고 읽다보면 나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위로가 되다가도 이 책이 마냥 공감이 돼서 슬프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을(乙)의 신분인 건가 싶어 쓸쓸해진다. 그러다 웃고 공감하면서 봤던 이 책이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물려받을 아버지 회사가 없는 흙수저인 내가 10년 뒤, 20년 뒤에도 이 책을 폭풍 공감하며 보게 될까 봐 무섭고 두렵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 대신 말해주고 싸워주면 고맙고 위안이 되는데 꼭 이 책이 차마 말 못 하는 직장인을 대신해서 말해주고 싸워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을 덮고나자 이 책을 직장인의 신분이 아닌 강백수 작가가 썼다는 사실이 고맙고 위안이 된다. 나 대신 말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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