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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무민 골짜기 ㅣ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505/pimg_7553891602189086.jpg)
"시벨리우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마리메꼬, 노키아, 무민."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中 -
무민을 알게 된 건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이었다.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중반쯤 핀란드가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게 되고 핀란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등장인물들 간 대화 속에서 핀란드를 대표하는
것들이 줄줄이 나열됐지만 내가 아는 건 노키아밖에 없었다. 나열된 것들을 일일이 검색해봐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고 또 금방 잊어버렸지만 마지막에
거론된 무민만은 선명하게 각인되었고 이후로는 어딜 가나 무민밖에 안 보였다.
알고 보니 무민은
나만 몰랐던 캐릭터였다. 순백의 희고 포동포동한 캐릭터는 "핀란드는 몰라도 무민은 안다"라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였다. 최근에는 듀나 작가의 『민트의 세계』에서 무민 에코백이 등장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기도 했는데
2049년
SF 미래 세계에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라는데 당연히 동의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무민을 캐릭터로만 소비했던 나는 작가 토베 얀손의 소설 시리즈로 다양한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무민의 세계관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무민 연작 소설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인 『늦가을 무민 골짜기』를 무민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되어 기뻤는데
무민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토베 얀손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 빈자리를 견딜 수 없어 쓴 작품이라는 소개
글이 소설을 읽기도 전부터 내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무민 가족은 늘 내 주위에 있는 존재
같았어. 그러니까 나무처럼 말이지. 아니면 물건처럼……." p.52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505/pimg_7553891602189087.jpg)
가을이 시작되고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무민 가족을 만나러 온 스너프킨, 훔퍼 토프트, 필리용크, 헤물렌, 그램블 할아버지, 밈블이 무민 골짜기를 찾지만 무민 가족은 집을 비웠다. 여섯 명의 손님은 주인 없는 빈집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삐걱거리지만 무민 파파를 위한 집을 만들고 그럼블 할아버지를 위한 연회를 열면서 무민 가족의 보금자리에서 그들만의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무민가족을 기다리는 여섯 캐릭터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콩트들이 모여 하나의 따뜻한 소설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무민 가족을 그리워하는 캐릭터들처럼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토베 얀손의 마음이 느껴진다.
( …) 책을 읽는 동안 토프트는 무민 가족이 왜 떠났는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이 알려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동물과 어두운 풍경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이름만 나왔다. (…) p.66
제목부터 범상치 않더니 소설 내내 핀란드의 자연이 느껴질 정도로 늦가을 무민 골짜기의 묘사들이 여유롭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은 물론이고 무심함 속에서 나오는 유머들이 무민의 세계관에 방금 입문했음에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트롤(자주 잊곤 하지만 무민은 하마가 아닌 트롤이다!)을 창조해내고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속에서 무심히 유머를 던질 줄 알고 종내엔 모두를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토베 얀손의, 무민의 세계관이 더 궁금해진다. 캐릭터로만 소비할 뻔했던 무민을 뒤늦게 소설로 만나 무민 골짜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만나 금방 빠져버렸다. 무민 연작 소설은 방금 완간됐지만 나의 무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민 소설에 대한 영업은 듀나 작가의 강력한 트윗으로 대신한다. 캐릭터만 좋아하지 마시고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