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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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를 감동시킨 14세 신인 작가의 경이로운 데뷔작!

'12세 문학상' 사상 최초 3년 연속 대상 수상 작가!

 

스즈키 루리카의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의 무수한 타이틀 중 가장 먼저 사로잡힌 건 판매 부수나 베스트셀러 순위보다 작가의 어린 나이에 대한 감탄과 놀라움이 먼저였다. 책의 제목과 짧은 소개와 작가에 대한 이력들만 봐도 어떤 내용의 글이 어떤 감정을 전해줄지 충분히 기대가 가능하지만 상상이상의 흥행 기록과 찬사로 기대 이상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가제본 서평단으로 활동하게 되어 받은 얇은 가제본의 표지 일러스트 역시 상상하고 기대했던 그 감성을 고스란히 전해주었지만 얇은 가제본이 단숨에 읽히는 동안 어린 작가가 쌓아 올린 무수한 타이틀들을 잊은 채 순수한 동화 같은 짧은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는 느낌만 진하게 파고들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소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린 작가가 일궈낸 기록과 성공을 보며 일본 문학계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스즈키 루리카가 태어난 2003년 즈음 한국과 일본 문학계에는 두 나라의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주는 두 작가가 있었는데 바로 1984년생 작가 귀여니와 와타야 리사였다. 이건 두 작가의 단순한 차이를 넘어 두 나라의 문학계와 문학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였다. 이후 주춤한 행보를 보여주는 공통점은 아쉽지만 무려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두 나라의 차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의 출간 소식이었다. 일본에서는 어리지만 문단의 인정을 받고 엄청난 흥행을 한 작가가 탄생을 알려왔지만 몇 년 전 잔혹 동시 논란부터 최근 테러 수준의 논란을 감당해야 했던 어린 유튜버 사례까지 한국의 상황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던 탓에 노파심이 절로 들었다.

 

 "내가 위험해 보이니?"

 "아, 그게, 글쎄."

 "아쉽지만 나한테는 그런 열정이 없어. 범죄를 저지를때도 어떤 의미에서 정열이 필요하거든. 나한테는 그런 게 없어. 말하자면 텅 빈 허물이야. 생명의 등불이 다 타기를 기다리기나 하는 시체야."

 

공사장에서 일하는 식탐 많고 자주 엉뚱한 엄마와 가난한 환경에도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초등학생 6학년 딸 다나카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친근한 주인집 아줌마와 그의 니트족 아들 겐토, 자애로운 게키야스당 식료품 가게 사장님 등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는 다나카의 생활 테두리 속 인물들과 소소한 일상에서 일본 특유의 착한 감성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일찍 철이 들어 조숙한 소녀 다나카의 시선을 따라가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갑작스레 맞이한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들을 마치 조카바보인 이모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미소 짓게 된다.

 

 "아, 그래. 신상품이 들어와서 마침 맛을 보려던 참이었어. 시식해줄래?"

 빨간색 앞치마 주머니에서 아몬드 초콜릿 상자를 꺼내 열었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나를 쥐었다. 사장이 겐토에게도 "괜찮다면 드세요"하고 권하자, 겐토는 또 살짝 턱을 당기기만 하고 묵묵히 하나를 쥐었다. 아줌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 것도 같다. 낯을 가려서 귀여울 나이가 아닌데.

 

소설의 촘촘한 짜임과 능란하게 배치한 감동과 유머 코드는 소설을 읽기도 전 너무나도 선명하게 각인되었던 '14세 자가'라는 수식어를 자주 잊게 만들었다. '14세 작가'의 작품보다 착한 감성의 동화 같은 소설로 작품이 읽혔다. 이런 감성들은 조금만 과하더라도 격렬한 거부반응이 오곤 하지만 전해오는 감성들은 과함도 부족함도 없이 너무나도 탁월했다. 유치함이 전해져도 '14세 작가'라는 수식어로 무조건 이해가 됐을 텐데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섭섭할 지경이었다. 얇은 가제본을 통해 소설가 스즈키 루리카의 재능의 뿌리를 빠르게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렸다면 이후로 발표될 작품들을 통해서 더 깊게 탄탄한 뿌리를 내려 성장한 모습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길 바래본다. 다나카도, 스즈키 루리카도 빠르게는 바라지 않으니 모두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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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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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 작가의 『독의_꽃』을 이 시기에 만난 건 나에겐 치명적이었다. 해마다 겨우내 멀쩡하다가 봄만 오면 심한 기침감기로 고생을 하곤 하는데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통과의례처럼 이번에도 잊지 않고 찾아온 기침감기를 맞이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회복이 예전 같지 않은 탓인지 이번 기침은 강하고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고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지기는커녕 심해지는 증상에 병원을 옮기고 약을 바꾸면 아픈 증상과 부작용이 180도 달라지면서 며칠은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에 찾아간 대형병원에서 약통에 떡하니 '마약'이라 적혀있는 약을 처방해주었고 괜히 더 심해지는 것 같은 부작용을 느끼며 겨우 기침이 떨어지고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휴식과 해독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생을 독을 품은 채 살아가는 남자 조몽구를 만난 것이다.

 

최수철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이전의 무수한 문학상 수상 경력과 문단에서의 활발한 활동에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커진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대치와 '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5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하게 다가온다. 제목과 표지만으로 음울하고 지독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건 짐작이 가능하지만 과연 이 묵직한 소설이 품은 독이 독자들에게 해독작용을 할지 중독작용을 할지 궁금해진다.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 p.100

 

작가의 집요함과 세심함이 소설 속에서 내내 두드러진다. 일생을 독에 잠식되어 살아가는 주인공 조몽구는 물론이고 어느 인물이나 상황들이 의미 없이 지나치는 게 없다. 독에 관한 방대하면서도 세밀한 취재가 돋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점이 『독의_꽃』의 약이 되지만 반대로 독이 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치명적인 독을 은유적 표현으로 풀어내면 더 좋았을 텐데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인물과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풀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것들을 끝까지 따라가는 데에 거부감과 부침이 조금 있었다. 아마 이러한 부침에는 소설 초반 조몽구의 일생을 잠식하는 이유 모를 악에 최악의 아버지이자 최악의 남편이었던 조영로의 어리석음에서 피어난 악행이 더해지며 강렬하게 다가온 자극들이 소설이 끝나가도록 한풀 꺾이기는커녕 끝까지 파고들어 그 진수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하게 읽히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거부(?)하고 싶었지만 소설이 분비하고 있는 독에 빠졌다고 할까. 조금의 틈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는 나에게 최수철 작가는 자신이 취재하고 공부하고 사로잡힌 '독'의 끝을 보여주었다.

 

 "손이 무척 부드럽고 촉촉하군요. 까다로운 세균을 배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토양 같다고나 할까요?"

 그 말에 자경이 낮게 소리 내어 웃으며 대꾸했다.

 "고맙습니다만, 어떤 말이든 칭찬처럼 들리게 하시네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독인지 약인지 구분하지 못하겠어요." p.384

 

소설이고 영화고 재미있게 읽고, 보고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하며 남들에게 추천은 하지만 두 번 보기는 엄두가 나지 않은 범주의 작품들이 있다. 악에 잠식되어 재난과도 같은 일생을 살아가는 조몽구의 이야기 역시 그런 범주에 포함시키지만 최수철 작가의 작품세계는 더 궁금해진다. 당장 찾아 읽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작품들 속에서 최수철 작가는 어떤 소재와 인물들을 탐미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수월하지는 않겠지만 더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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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이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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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입장을  

사진으로 읽고 싶었다. 

시 아닌 형식으로 시에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 

 

각자의 호흡으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시처럼

시가 아닌 것처럼

사진처럼

사진이 아닌 것처럼

이어지는 것처럼

파편들처럼.

 

하나의 입장이라도 골똘히 들여다보게 되면 기쁘겠다.

 

-작가의 말 중에서

 

사진 산문집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작가와 몇몇 작품들이 있지만 이훤 시인의 사진산문집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를 마주했을 때 가졌던 기대치는 내가 이전에 알던 산문집이나 사진집이 주었던 감성이나 낭만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훤 시인은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몰랐던 작가였고 책을 펼친 건 아직 3페이지에 불과했지만 제목과 표지는 물론이고 작가의 말에서부터 이 책은 딱 내 책이라는 걸 바로 직감했다. 본문으로 넘어가기도 전부터 책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책과 나는 자석의 상극처럼 딱 달라붙었다.

 

 

그렇게 책과 딱 달라붙어 나만의 호흡으로 골똘히 들여다본 사진과 글들은 이전에 내가 읽었던 사진 산문집들을 부정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완벽했다. 이 책이 가진 질감은 이 세상 질감이 아니다. 거대함과 웅장함에 압사시킬 것 같은 사진에 시 같지만 시가 아니고 산문 같지만 산문이 아닌 모호한 글이 또 자석의 상극처럼 딱 달라붙었다. 마치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 같은 체험을 경험시켜준다. 이건 '책을 읽었다'가 아니라 '예술을 경험했다'가 맞는 표현이다.


이훤 시인이 사진을 통해 보여주는 시선과 글을 통해 보여주는 감성이 전달하는 감정의 파고가 커서 자주 멈춰 감정을 추스르고 차곡차곡 모아 담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 미술관은  작품 앞에 많은 의자가 필요한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기대 이상으로 크다 보니 이훤 시인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한다. 어떤 시를 쓰는 분인지,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지부터 평소 시인이 마주하는 풍경들과 어떤 작품들을 보고 읽으며 영혼을 수혈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 막 시인의 신간이 발표됐는데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이야기됐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훤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고 읽을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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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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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아 언제까지고 어려워만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동경할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다. 그게 시의 진짜 매력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고 있다. 시에 대해서 모르는 만큼 궁금한 시인들이 언제나 많다. 그런 시인들의 글을 시가 아닌 다른 장르로 만날 수 있다면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는데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역시 그런 이유로 반가운 작품이었다. 보통 산문집이 아니다. 너무나 궁금했던 문보영 시인이 블로그에 썼던 일기를 묶어낸 책이라고 한다. 시인의 일기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책이 전하는 다정한 방식에 대책 없이 반해버렸음을 미리 고백한다.

 

 순조롭게 익숙한 아픔이 왔다. 새치기나 어긋남 없이 그것은 순차대로 찾아오고 있었다. 죄어오는 고통. 손가락 끝에 작은 막대기를 그렸다. 하루에 하나씩. 열흘이 지나면 조금 괜찮을 거야. 믿었다. 열흘이 지났다. 손가락이 부족했다. 괜찮았다. 열 손가락을 이진법으로 세면 1,024까지 셀 수 있으니까. p.97


 

젊은 시인의 타고난 감각과 감성이 일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밝고 경쾌한듯하지만 우울과 고통이 예고 없이 찾아와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코너에 내몰려 방치된듯하지만 특유의 씩씩함이 독자들에게도 전염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약국의 실수로 잘못 처방된 약으로 증상이 나아지고 심리치료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고 계속되는 고통에 힘들어하지만 자신보다 친구를 더 걱정하는 모습들이 마치 이건 '죽고 싶지만 피자는 먹고 싶어'버전인가 싶지만 문보영은 문보영이다. 일상과 주변의 이야기를 이토록 씩씩하고 다정하게 들려주는 방식에, 깊고깊은 그녀의 글이 전해주는 친절함에 어느새 빠져들고 말았다.


 

 왜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웃지 못할까? 생각해보면, 세상이 웃는 방식으로 내가 웃었다면, 애초에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미소 짓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미소 지었으므로 시를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픈 이야기다.


 미안해 친구들아, 나는 문학 때문에 너무 편협해졌어. 나는 시를 쓰느라 우물 안에 들어갔고, 들어갔는데 우물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물 안에 우물을 또 만들었고, 그 우물을 파서 기어이 더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간 슬픈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왜냐하면 문학은 결국 깊이깊이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인데, 내가 무언가를 너무 깊게 이해할수록 우물 밖의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p.173


 

나라는 단순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뻔한 예측과 기대를 많이 벗어난 책이었지만 그래서 문보영 시인의 성장을 오랜 시간 동안 읽어보고 싶다는 갈망을 느끼게 해주었다. 예민함, 고통, 우울, 감성, 경쾌함, 씩씩함이 공존하는 문보영 시인의 30대, 40대, 50대, 60대를 함께 따라 읽고 싶다. 나이를 먹어도 문보영 시인의 타고난 감각과 감성으로 그녀의 글들은 여전히 젊고 세련될 것을 믿으니 부디 문보영 시인님, 덜 아프고 계속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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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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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마리메꼬, 노키아, 무민."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中 -

 

무민을 알게 된 건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이었다.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중반쯤 핀란드가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게 되고 핀란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등장인물들 간 대화 속에서 핀란드를 대표하는 것들이 줄줄이 나열됐지만 내가 아는 건 노키아밖에 없었다. 나열된 것들을 일일이 검색해봐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고 또 금방 잊어버렸지만 마지막에 거론된 무민만은 선명하게 각인되었고 이후로는 어딜 가나 무민밖에 안 보였다.

알고 보니 무민은 나만 몰랐던 캐릭터였다. 순백의 희고 포동포동한 캐릭터는 "핀란드는 몰라도 무민은 안다"라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였다. 최근에는 듀나 작가의 『민트의 세계』에서 무민 에코백이 등장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기도 했는데 2049년 SF 미래 세계에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라는데 당연히 동의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무민을 캐릭터로만 소비했던 나는 작가 토베 얀손의 소설 시리즈로 다양한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무민의 세계관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무민 연작 소설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인 『늦가을 무민 골짜기』를 무민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되어 기뻤는데 무민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토베 얀손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 빈자리를 견딜 수 없어 쓴 작품이라는 소개 글이 소설을 읽기도 전부터 내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무민 가족은 늘 내 주위에 있는 존재 같았어. 그러니까 나무처럼 말이지. 아니면 물건처럼……." p.52

 

 

가을이 시작되고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무민 가족을 만나러 온 스너프킨, 훔퍼 토프트, 필리용크, 헤물렌, 그램블 할아버지, 밈블이 무민 골짜기를 찾지만 무민 가족은 집을 비웠다. 여섯 명의 손님은 주인 없는 빈집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삐걱거리지만 무민 파파를 위한 집을 만들고 그럼블 할아버지를 위한 연회를 열면서 무민 가족의 보금자리에서 그들만의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무민가족을 기다리는 여섯 캐릭터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콩트들이 모여 하나의 따뜻한 소설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무민 가족을 그리워하는 캐릭터들처럼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토베 얀손의 마음이 느껴진다.

 

( …) 책을 읽는 동안 토프트는 무민 가족이 왜 떠났는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이 알려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동물과 어두운 풍경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이름만 나왔다. (…) p.66

 

 

제목부터 범상치 않더니 소설 내내 핀란드의 자연이 느껴질 정도로 늦가을 무민 골짜기의 묘사들이 여유롭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은 물론이고 무심함 속에서 나오는 유머들이 무민의 세계관에 방금 입문했음에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트롤(자주 잊곤 하지만 무민은 하마가 아닌 트롤이다!)을 창조해내고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속에서 무심히 유머를 던질 줄 알고 종내엔 모두를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토베 얀손의, 무민의 세계관이 더 궁금해진다. 캐릭터로만 소비할 뻔했던 무민을 뒤늦게 소설로 만나 무민 골짜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만나 금방 빠져버렸다. 무민 연작 소설은 방금 완간됐지만 나의 무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민 소설에 대한 영업은 듀나 작가의 강력한 트윗으로 대신한다. 캐릭터만 좋아하지 마시고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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