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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평점 :

최수철 작가의 『독의_꽃』을 이 시기에 만난 건 나에겐 치명적이었다. 해마다 겨우내 멀쩡하다가 봄만 오면 심한 기침감기로 고생을 하곤 하는데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통과의례처럼 이번에도 잊지 않고 찾아온 기침감기를 맞이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회복이 예전 같지 않은 탓인지 이번 기침은 강하고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고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지기는커녕 심해지는 증상에 병원을 옮기고 약을 바꾸면 아픈 증상과 부작용이 180도 달라지면서 며칠은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에 찾아간 대형병원에서 약통에 떡하니 '마약'이라 적혀있는 약을 처방해주었고 괜히 더 심해지는 것 같은 부작용을 느끼며 겨우 기침이 떨어지고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휴식과 해독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생을 독을 품은 채 살아가는 남자 조몽구를 만난 것이다.
최수철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이전의 무수한 문학상 수상 경력과 문단에서의 활발한 활동에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커진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대치와 '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5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하게 다가온다. 제목과 표지만으로 음울하고 지독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건 짐작이 가능하지만 과연 이 묵직한 소설이 품은 독이 독자들에게 해독작용을 할지 중독작용을 할지 궁금해진다.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 p.100
작가의 집요함과 세심함이 소설 속에서 내내 두드러진다. 일생을 독에 잠식되어 살아가는 주인공 조몽구는 물론이고 어느 인물이나 상황들이 의미 없이 지나치는 게 없다. 독에 관한 방대하면서도 세밀한 취재가 돋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점이 『독의_꽃』의 약이 되지만 반대로 독이 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치명적인 독을 은유적 표현으로 풀어내면 더 좋았을 텐데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인물과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풀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것들을 끝까지 따라가는 데에 거부감과 부침이 조금 있었다. 아마 이러한 부침에는 소설 초반 조몽구의 일생을 잠식하는 이유 모를 악에 최악의 아버지이자 최악의 남편이었던 조영로의 어리석음에서 피어난 악행이 더해지며 강렬하게 다가온 자극들이 소설이 끝나가도록 한풀 꺾이기는커녕 끝까지 파고들어 그 진수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하게 읽히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거부(?)하고 싶었지만 소설이 분비하고 있는 독에 빠졌다고 할까. 조금의 틈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는 나에게 최수철 작가는 자신이 취재하고 공부하고 사로잡힌 '독'의 끝을 보여주었다.
"손이 무척 부드럽고 촉촉하군요. 까다로운 세균을 배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토양 같다고나 할까요?"
그 말에 자경이 낮게 소리 내어 웃으며 대꾸했다.
"고맙습니다만, 어떤 말이든 칭찬처럼 들리게 하시네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독인지 약인지 구분하지 못하겠어요." p.384
소설이고 영화고 재미있게 읽고, 보고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하며 남들에게 추천은 하지만 두 번 보기는 엄두가 나지 않은 범주의 작품들이 있다. 악에 잠식되어 재난과도 같은 일생을 살아가는 조몽구의 이야기 역시 그런 범주에 포함시키지만 최수철 작가의 작품세계는 더 궁금해진다. 당장 찾아 읽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작품들 속에서 최수철 작가는 어떤 소재와 인물들을 탐미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수월하지는 않겠지만 더 들여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