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아 언제까지고 어려워만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동경할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다. 그게 시의 진짜 매력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고 있다. 시에 대해서 모르는 만큼 궁금한 시인들이 언제나 많다. 그런 시인들의 글을 시가 아닌 다른 장르로 만날 수 있다면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는데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역시 그런 이유로 반가운 작품이었다. 보통 산문집이 아니다. 너무나 궁금했던 문보영 시인이 블로그에 썼던 일기를 묶어낸 책이라고 한다. 시인의 일기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책이 전하는 다정한 방식에 대책 없이 반해버렸음을 미리 고백한다.

 

 순조롭게 익숙한 아픔이 왔다. 새치기나 어긋남 없이 그것은 순차대로 찾아오고 있었다. 죄어오는 고통. 손가락 끝에 작은 막대기를 그렸다. 하루에 하나씩. 열흘이 지나면 조금 괜찮을 거야. 믿었다. 열흘이 지났다. 손가락이 부족했다. 괜찮았다. 열 손가락을 이진법으로 세면 1,024까지 셀 수 있으니까. p.97


 

젊은 시인의 타고난 감각과 감성이 일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밝고 경쾌한듯하지만 우울과 고통이 예고 없이 찾아와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코너에 내몰려 방치된듯하지만 특유의 씩씩함이 독자들에게도 전염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약국의 실수로 잘못 처방된 약으로 증상이 나아지고 심리치료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고 계속되는 고통에 힘들어하지만 자신보다 친구를 더 걱정하는 모습들이 마치 이건 '죽고 싶지만 피자는 먹고 싶어'버전인가 싶지만 문보영은 문보영이다. 일상과 주변의 이야기를 이토록 씩씩하고 다정하게 들려주는 방식에, 깊고깊은 그녀의 글이 전해주는 친절함에 어느새 빠져들고 말았다.


 

 왜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웃지 못할까? 생각해보면, 세상이 웃는 방식으로 내가 웃었다면, 애초에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미소 짓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미소 지었으므로 시를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픈 이야기다.


 미안해 친구들아, 나는 문학 때문에 너무 편협해졌어. 나는 시를 쓰느라 우물 안에 들어갔고, 들어갔는데 우물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물 안에 우물을 또 만들었고, 그 우물을 파서 기어이 더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간 슬픈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왜냐하면 문학은 결국 깊이깊이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인데, 내가 무언가를 너무 깊게 이해할수록 우물 밖의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p.173


 

나라는 단순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뻔한 예측과 기대를 많이 벗어난 책이었지만 그래서 문보영 시인의 성장을 오랜 시간 동안 읽어보고 싶다는 갈망을 느끼게 해주었다. 예민함, 고통, 우울, 감성, 경쾌함, 씩씩함이 공존하는 문보영 시인의 30대, 40대, 50대, 60대를 함께 따라 읽고 싶다. 나이를 먹어도 문보영 시인의 타고난 감각과 감성으로 그녀의 글들은 여전히 젊고 세련될 것을 믿으니 부디 문보영 시인님, 덜 아프고 계속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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