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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 - 3000년을 이어온 설득의 완벽한 도구들
제이 하인리히 지음, 조용빈 옮김 / 토네이도 / 2024년 10월
평점 :
토네이도 출판사의 신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원제 : Thank you for arguing)은 제목부터 매력적입니다.
세상에,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기술이라니! '이긴다'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와의 '싸움'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고 지금껏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렇게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배송 받자마자, 홀리듯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저자부터 살펴볼게요. 저자인 제이 하인리히는 대화와 설득 분야의 최고 전문가입니다. 이 책은 무려 14개국에서 출간되었고, 곧장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버드대 추천도서 TOP 10'에 선정된 바도 있다고 하니 더 이상의 수식이 필요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데 깊은 영향력을 끼치는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수사학'에 관심이 많아 이 책을 집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도 철학과 재학 시절엔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에 꽤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수사학이 조금씩 머릿 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치 제가 대학 시절 잊고 살았던 멋진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중의 하나가 '소통'이고, '소통'을 잘하려면 '수사학' 공부가 필수인데,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살았던 게 후회스러웠지요. 그래도 지금이나마 이토록 훌륭한 책을 접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는 저자의 약력 못지 않게 번역가도 자세히 살펴보는 편인데요. 이 책은 바른번역 출신 조용빈 번역가가 옮긴 책입니다. 가끔 번역가 본인은 이해하고 옮긴건가 싶은 문장이 있는 책들도 있는데, 이 책은 가독성도 괜찮고, 번역체 문장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은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으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짧은 글들을 여러 편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형태여서 굳이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수필집을 읽는 것처럼 각각의 글이 독립성이 있으면서 물흐르듯 읽힌다고 할까요?
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독서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출퇴근 시간, 점심 시간같은 짜투리 시간 정도에나 독서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수사학'이 누구보다도 필요한 '직장인'들이 읽기에 참 좋습니다. 글 한 편당 2~3장 정도로 넉넉 잡고 10분 정도만 투자해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살아가면서 싸움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논쟁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고도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저자가 '싸움꾼'과 '논쟁가'를 구분짓는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마주한 상대를 돌아서게 만들고, 논쟁은 돌아선 상대를 돌아오게 만든다 -27쪽"라는 데 크게 동의합니다.
흔히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변호사 등과 같은 '법조인'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논리'만으로는 결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지요. 우리는 '법치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수긍하는 것이지, 마음 속으로 그 말에 진심으로 감동해서 따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논리'보다 더 중요한 '소통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진정으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말하기 방법'이 무엇인지를 예시로 가르쳐줍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아포리즘이 아닌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준다는 게 이 책의 최대 장점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사학을 날 것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책제목 그대로 상대방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는 내 목적을 달성해서 이길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책의 42쪽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제안해서 내가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들고 있는 예시입니다. A와 B는 애인 사이입니다. A는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만, B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럴 때 B가 A에게 어떻게 말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영리한 방법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효과적인 설득 방법'입니다.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믿음, 가치관 등을 파악해야 하는 게 일순위라는 점을 책에서 다양한 예시로 잘 보여줍니다. 123쪽에서 나오는 예시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저자는 '명문대생을 상대로 군입대를 독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무척 흥미롭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군입대에만 초점을 맞추어 "강한 국가만이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라고 설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명문대생들 사이의 상식선을 자극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군대는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인재를 활용하고 싶어합니다."와 같이 말이지요.
그리고 '정치인'들이 어떻게 대중을 설득하는 교묘한 방법도 알려줍니다. 최고의 설득자들이 다수의 상대를 어떻게 자기 편으로 끌여들이는지가 나와 있는데,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유명한 정치인들도 생각해보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사학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치인들에게만 국한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학교, 직장 등도 역시 작은 '정치적 집단'이기 때문에 책에서 소개되는 정치인들의 수사학을 안다면 설득을 하거나, 설득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저자는 227쪽에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저자의 통찰에 감탄을 한 부분이라 인용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승리란 이런 것이다. 맞서 싸워 피 흘리며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 다음, 그가 당신에게 절실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설득의 세계에서 완벽한 승리다."
그리고 제가 즐겨보는 TED를 매의 눈으로 완벽하게 분석한 저자의 통찰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상이 왜 TED에 열광을 하는지를 구상, 배열, 스타일, 전달 방법 등으로 나누어 철저하게 살펴보고 TED식 수사학을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TED에 나오는 스피커들은 원래부터 말솜씨가 좋은 사람이고, 저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하고 살았는데, 이 챕터를 읽고 나서는 저도 TED 스피커처럼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킬 정도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 책은 저 혼자만 보고 싶을 정도로, 대화와 설득의 방법을 잘 쓴 책입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실전에서는 써먹지도 못할 두루뭉술한 이야기들로 책 한 권 분량이 나온 게 아닙니다. 한 챕터만 제대로 읽어도 바로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실용적인 화술이 나와 있습니다. 이 책은 두고두고 틈날 때마다 계속 읽을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싶은, 사람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