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들어 주는 벤치 - 열네 명의 할머니, 한 개의 벤치, 오십만 명을 살린 마음 치유의 혁명
딕슨 치반다 지음,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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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치유의혁명 #아프리카 #짐바브웨 #할머니들의이야기 #마음을들어주는벤치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음을 들어주는 벤치>를 읽으며 치유는 반드시 전문가의 방 안에서만 시작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이 책은 정신건강을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일이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많지만 의료 자원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마음을 들어주는 벤치>는 단순한 우정 벤치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한 의사가 자신이 배운 전문성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을 치유하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배워가는 기록처럼 느꼈습니다.





그 출발점은 에리카라는 젊은 여성의 죽음입니다. 치반다 작가님은 2002년 처음 만난 에리카가 학업과 가족의 기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우울증을 겪었다고 회상합니다. 결국 그녀를 지키지 못한 경험은 작가님에게 병원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이후 할머니들이 보여주는 상담 방식입니다. 정신분석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고, 그것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타인의 존재를 통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기 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정 벤치는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 해결과 공동체의 연결까지 더합니다. 마음의 문제를 개인의 내부에만 가두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난과 가족 문제, 일자리, 사회적 고립에서 비롯된 고통을 개인의 의지만으로 치료하겠다는 발상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충분히 이야기하고 나면 같은 문제를 보는 방식이 달라질 때가 있었습니다. 해결책을 대신 제시해 준 사람보다 제 말을 끊지 않고 들은 사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책 속 할머니들이 내담자에게 정답을 내려주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 방법을 찾게 한다는 대목에 공감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우정 벤치가 ‘전문가 대 비전문가’라는 단순한 대립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은 단지 인생 경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상담자가 된 것이 아니라 훈련을 받았고, 치반다 작가님 역시 연구와 임상시험을 통해 그 효과를 검증했습니다. 즉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전문지식의 무용함이 아니라 전문지식과 공동체의 지혜가 만났을 때 생기는 힘입니다. 정신건강을 개인의 병리만으로 바라보면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와 환경을 놓치기 쉽습니다. 반대로 따뜻한 마음만 강조하면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상황을 놓칠 위험도 있습니다. 우정 벤치의 의미는 바로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에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에리카와 함께 걸었던 공간을 다시 찾는 장면이 특히 먹먹했던 것도,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출발점에 결국 한 사람을 잃은 기억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들어주는 벤치>는 우울과 불안, 고립 같은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 있는 분뿐 아니라 사람을 돕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분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심리학이나 상담을 공부하는 독자라면 이론이 실제 공동체에서 어떤 형태로 변형되어 작동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고, 가까운 사람의 어려움을 어떻게 들어줘야 할지 고민했던 독자에게도 좋은 질문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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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책 인문학 중국고전 ㅣ 1일 1책 인문학
다케우치 미노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다미디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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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국고전을 읽다 보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난해함보다도 방대함입니다. <논어>, <맹자>, <장자>, <사기>처럼 익숙한 제목부터 <염철론>, <근사록>, <전습록>, <벽암록>까지 들어가면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1일 1책 인문학 중국고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용한 안내서입니다. 다케우치 미노루 작가님은 교토대학과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공부하고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등을 역임한 일본 중국학의 권위자입니다. 양억관 번역가님은 경희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국 역사소설과 일본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겨온 전문 번역가입니다. 584쪽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한 권의 고전을 짧은 단위로 나누어 소개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크지 않습니다.





책의 장점은 중국고전을 단순히 ‘좋은 말씀 모음집’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역사와 정치, 사상과 처세, 소설과 희곡, 시와 산문이라는 네 갈래를 따라가다 보면 고전이 탄생한 시대와 그것을 쓴 인간이 함께 보입니다. 특히 첨부한 본문에서 <삼국지>의 진수와 <제갈량집>의 제갈량을 소개하는 방식을 보면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인물의 출신과 시대적 배경을 먼저 짚고, 저술의 구성과 후대에 미친 영향까지 연결합니다. <한비자>나 <논어>의 한 문장을 오늘의 처세술로 떼어 소비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독서입니다. 고전의 문장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난 격언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정치적 갈등과 인간관계, 당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한문과 동양고전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도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한자를 많이 알고 문장을 정확히 해석하면 고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부할수록 글자 뜻을 아는 것과 텍스트의 맥락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같은 ‘인(仁)’이나 ‘덕(德)’이라는 글자도 어느 시대의 누가 어떤 정치적·철학적 맥락에서 사용했느냐에 따라 읽어야 할 층위가 달라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앞부분에 시대 구분표와 지도, 역사 연표를 배치한 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중국고전은 수천 년 동안 서로 논박하고 계승하며 형성된 거대한 대화의 기록입니다. <논어>를 읽고 <맹자>와 <순자>를 거쳐 <한비자>로 이동하면 각각의 책이 고립된 섬이 아니라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사상사의 일부라는 사실이 보입니다.





본문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십팔사략>과 <유효경> 등을 소개하면서 정치와 인간의 수양을 연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컨대 책에 인용된 “무릇 사람이 바라는 것을 손에 넣을 때, 순수하게 바라는 것만을 가질 수는 없다”는 취지의 문장은 고전 정치사상의 현실성을 잘 보여줍니다. 욕망에는 언제나 비용과 부작용이 따라온다는 통찰은 현대의 조직이나 정치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중국 사상사를 조금 넓게 보면 유가가 개인의 수양과 사회적 질서를 연결하고, 법가가 제도와 권력의 작동을 파고들며, 도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치와 구분 자체를 의심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로 충돌하는 사상들을 한꺼번에 읽는 재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1일 1책 인문학 중국고전>은 중국고전 전공자를 위한 깊은 주석서라기보다 앞으로 무엇을 읽을지 결정하기 위한 지적 지도입니다. <사기>를 읽어보고 싶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에 망설였던 분, 제자백가의 관계가 머릿속에서 뒤섞이는 분, 중국 역사와 문학을 함께 조망하고 싶은 분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1일1책인문학중국고전 #다케우치미노루 #이다미디어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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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용기 있게 - 사랑과 지혜로 엮어낸 투병과 보살핌의 기록
켄 윌버 지음, 박윤정 옮김 / 김영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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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면서 자신의 삶까지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분께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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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용기 있게 - 사랑과 지혜로 엮어낸 투병과 보살핌의 기록
켄 윌버 지음, 박윤정 옮김 / 김영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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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시간 #온전한사랑 #병마 #투쟁의기록 #인간의존엄 #영혼의정화 #우아하게용기있게 #투병기록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아하게 용기 있게>는 암 투병기이면서 사랑 이야기이고, 동시에 인간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심리·영성의 기록입니다. 트랜스퍼스널 심리학과 통합심리학을 대표하는 사상가 켄 윌버 작가님은 의학과 생화학을 공부한 뒤 심리학·철학·종교와 동서양의 영성 전통을 아우르는 통합이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학자의 목소리와 아내 트레야를 사랑하고 돌보는 한 인간의 목소리가 함께 등장합니다. 번역을 맡은 박윤정 번역가님은 한림대학교 영어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성·종교·심리 분야의 여러 책을 우리말로 옮긴 전문 번역가입니다. 특히 켄의 서술과 트레야의 일기·편지 등이 교차하는 책의 성격을 살려 두 사람의 감정과 사유를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켄과 트레야는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불과 열흘 뒤 트레야가 유방암 진단을 받으며 신혼생활은 투병과 간병의 시간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고난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료 과정에서 희망과 절망이 반복되고, 환자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도 지쳐갑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짜증을 내고 상처를 주며, 때로는 각자의 삶이 상대의 병에 삼켜지는 경험도 합니다. 심리학에서 돌봄 노동을 이야기할 때 환자의 고통만큼 중요한 문제가 보호자의 소진입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인간의 심리적 자원이 무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한 돌봄에는 상대를 위한 헌신과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경계가 함께 필요합니다. 두 사람이 갈등 끝에 이를 깨닫는 과정은 이 책을 단순한 감동적인 투병기와 구별해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기도 했고, 또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트레야가 켄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사랑받고 인정받는 경험을 처음으로 깊이 느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동시에 암 치료 이후 트레야가 자신의 삶을 다시 적극적으로 확장해나가는 모습도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그녀는 암이라는 사건을 자신의 정체성 전체로 만들지 않습니다. 암 환자라는 사실은 삶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회복탄력성을 단순한 긍정적 사고와 구별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고통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과 상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 자기 삶의 의미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책에 나타나는 트레야의 변화는 ‘병 덕분에 성장했다’는 낭만적인 서사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힘든 일을 겪을 때면 그 사건을 빨리 의미 있는 경험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사람에게 항상 즉각적인 깨달음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버티고, 화를 내고, 충분히 슬퍼하는 것 자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암을 환자의 정신 상태나 잘못된 사고방식 탓으로 돌리는 일부 뉴에이지적 해석을 비판하는 부분에도 공감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병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희망처럼 들리지만 뒤집으면 병이 낫지 않은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트레야가 의학적 치료를 받으면서 명상과 영적 수행 역시 활용하는 모습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성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우아하게 용기 있게>는 암 환자와 가족에게만 권하고 싶은 책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면서 자신의 삶까지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분, 질병과 죽음 앞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궁금한 분, 심리학과 영성의 접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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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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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물에는 변하지 않는 성질이 있고, 세계는 객관적인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를 읽다 보면 이 익숙한 전제가 정말일까하는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의자’의 사례가 흥미롭습니다. 방 안의 저에게 의자는 정지해 있지만, 자전하고 공전하는 지구와 우주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자는 정지해 있다’와 ‘의자는 움직인다’ 가운데 무엇이 진실일까요. 카를로 로벨리 작가님은 여기서 어느 하나를 고르는 대신 질문의 전제를 바꿉니다. 사물의 성질은 무엇과의 관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관계적 관점을 양자역학에서 출발해 시간과 공간, 지식, 자유의지와 존재의 문제까지 확장합니다. 





카를로 로벨리 작가님은 루프양자중력을 연구해 온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등을 통해 현대물리학의 난해한 문제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온 과학자입니다. 이번 책은 2024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하기에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수식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번역을 맡은 김현주 번역가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에서 언어 과정을 수료했으며,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비롯해 과학·인문 분야의 다양한 책을 우리말로 옮겨왔습니다. 로벨리 작가님의 문장은 과학적 설명과 철학적 사유를 빈번하게 오가는데, 이번 책에서도 그 흐름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시스템 A와 B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물체의 속성이 물체 안에 처음부터 완성된 값으로 들어 있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특정한 값이 드러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여기서 저는 현대물리학이 우리의 일상적인 직관을 얼마나 과감하게 흔드는 학문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위치나 운동 상태를 비교적 명료하게 기술할 수 있었지만,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직관을 흔들었고 양자역학은 관측과 물리적 상태를 둘러싼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로벨리 작가님이 “모든 것은 주관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와 상호작용 역시 물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세계에 절대적인 관점을 하나 세우는 대신, 서로 다른 관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어떤 사건에 대해 ‘분명히 이게 맞다’고 판단했다가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맥락을 알게 된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의 제 위치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이 상대의 상황이나 이전의 맥락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인간관계의 상대성과 양자역학의 관계성을 동일한 원리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과학에서 출발한 ‘관계’라는 개념이 우리의 사고 습관을 점검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양자 현상과 맥락성에 관한 해석을 ‘관계적 해석’이라 부르는 대목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공식과 계산법을 배우려는 독자보다 현대물리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 시간·공간·양자역학 같은 주제에는 관심이 있지만 전문적인 물리학책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분에게도 좋은 선택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물리학 지식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역시 완결된 정답이 아니라 관찰과 검증, 수정이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과학의 태도입니다. 확실한 답을 하나 더 갖게 하는 책이라기보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믿었던 전제를 다시 질문하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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