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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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물에는 변하지 않는 성질이 있고, 세계는 객관적인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를 읽다 보면 이 익숙한 전제가 정말일까하는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의자’의 사례가 흥미롭습니다. 방 안의 저에게 의자는 정지해 있지만, 자전하고 공전하는 지구와 우주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자는 정지해 있다’와 ‘의자는 움직인다’ 가운데 무엇이 진실일까요. 카를로 로벨리 작가님은 여기서 어느 하나를 고르는 대신 질문의 전제를 바꿉니다. 사물의 성질은 무엇과의 관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관계적 관점을 양자역학에서 출발해 시간과 공간, 지식, 자유의지와 존재의 문제까지 확장합니다. 





카를로 로벨리 작가님은 루프양자중력을 연구해 온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등을 통해 현대물리학의 난해한 문제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온 과학자입니다. 이번 책은 2024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하기에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수식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번역을 맡은 김현주 번역가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에서 언어 과정을 수료했으며,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비롯해 과학·인문 분야의 다양한 책을 우리말로 옮겨왔습니다. 로벨리 작가님의 문장은 과학적 설명과 철학적 사유를 빈번하게 오가는데, 이번 책에서도 그 흐름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시스템 A와 B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물체의 속성이 물체 안에 처음부터 완성된 값으로 들어 있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특정한 값이 드러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여기서 저는 현대물리학이 우리의 일상적인 직관을 얼마나 과감하게 흔드는 학문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위치나 운동 상태를 비교적 명료하게 기술할 수 있었지만,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직관을 흔들었고 양자역학은 관측과 물리적 상태를 둘러싼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로벨리 작가님이 “모든 것은 주관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와 상호작용 역시 물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세계에 절대적인 관점을 하나 세우는 대신, 서로 다른 관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어떤 사건에 대해 ‘분명히 이게 맞다’고 판단했다가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맥락을 알게 된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의 제 위치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이 상대의 상황이나 이전의 맥락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인간관계의 상대성과 양자역학의 관계성을 동일한 원리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과학에서 출발한 ‘관계’라는 개념이 우리의 사고 습관을 점검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양자 현상과 맥락성에 관한 해석을 ‘관계적 해석’이라 부르는 대목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공식과 계산법을 배우려는 독자보다 현대물리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 시간·공간·양자역학 같은 주제에는 관심이 있지만 전문적인 물리학책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분에게도 좋은 선택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물리학 지식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역시 완결된 정답이 아니라 관찰과 검증, 수정이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과학의 태도입니다. 확실한 답을 하나 더 갖게 하는 책이라기보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믿었던 전제를 다시 질문하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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