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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잊어버리지 않는 세계사 - 12가지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야마모토 나오토 지음, 정문주 옮김 / 시그마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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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봉건제’란 지방 통치 시스템(지방분권)을 두루 가리키는 말로서 군주와 가신의 주종관계를 나타낸다. 군주는 가신에게 영지(봉토)를 주고, 가신은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뒤 군대에 부역하거나 공물을 바쳤다. 이 제도는 동서고금에 모두 존재했다. 봉건제 시스템을 알아두면 세계사를 배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되겠지만, 이런 말만으로 바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닐테니 이 제도가 생긴 배경과 원리를 짚어보자.
-61 p / <12가지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더 이상 잊어버리지 않는 세계사> / 시그마북스

세계사는 많은 이들에게 좌절의 과목입니다. 수없이 등장하는 용어, 복잡한 사건의 인과관계, 머릿속에 남지 않는 연표와 인물들 때문입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남는 것은 파편적인 에피소드뿐, 전체 흐름은 쉽게 사라지고 맙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좌절에서 출발합니다. 왜 세계사는 늘 잊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기억되는 지식’이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사를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전환합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세계사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을 20개의 ‘키워드’로 정리하는 것이고, 둘째는 역사 전개 과정에서 반복되는 원리를 12개의 ‘패턴’으로 구조화하는 것입니다. 사건과 연표를 늘어놓는 대신, 세계사가 움직이는 뼈대를 먼저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정의’에 대한 집요함입니다. 저자는 정치, 권력, 권위, 종교와 같은 기본 개념을 모호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개념을 대충 이해하면 역사의 본질 역시 흐릿해진다는 전제 아래,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용어들의 의미를 0장과 1장에서 차분히 정리합니다. 이는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뿐 아니라, 이미 여러 번 공부했지만 늘 헷갈렸던 독자에게도 유효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2장에서 제시되는 12가지 패턴은 이 책의 핵심입니다. ‘정치는 종교를 이용한다’, ‘민족의 이동은 역사를 바꾼다’, ‘패권을 쥔 국가는 평화를 말한다’와 같은 패턴들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반복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고대 로마, 중세 유럽과 근대 국가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유사한 구조가 작동하고 있음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덕분에 독자는 개별 사건을 외우지 않아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날 때 그 의미를 스스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책 속 사례들 역시 구조적 설명에 충실합니다. 예를 들어 기마 유목민의 이동을 영웅적 서사가 아닌 기후 변화와 생존 조건의 압박이라는 맥락에서 설명하거나, ‘팍스 로마나’를 이상적인 평화가 아닌 패권국이 만들어낸 질서로 해석하는 대목은 세계사를 보다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러한 시선은 오늘날의 국제 정세와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또한 저자는 세계사의 기본 시기와 지명을 ‘이미지’로 묶어 기억할 것을 권하는데요. 특정 국가나 제국이 주도권을 쥐었던 시기를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하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지도 위에서 함께 떠올리는 방식입니다. 이는 세계사를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의 흐름으로 인식하게 해주며, 이해를 높여줍니다.
저는 특히 ‘정치와 종교’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챕터는 종교를 신앙의 영역이 아니라 통치 기술의 하나로 다룹니다. 정치가 종교 조직의 위계와 동원력을 활용해 국가를 운영해왔다는 설명은, 세계사를 도덕의 문제에서 구조의 문제로 단번에 옮겨 놓습니다. 또한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이야기보다 “왜 항상 이런 방식이 반복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좋았습니다. 종교가 보호받고 장려된 이유가 신성함 때문이 아니라, 통치 비용과 정당성의 문제였다는 지점에서 세계사는 갑자기 냉정하고 현실적인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 챕터를 읽고 나면, 종교와 정치가 가까워지는 장면을 더 이상 순진하게 볼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세계사를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외우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지식, 사건을 넘어 구조를 보는 시선을 길러주는 점에서 이 책은 교양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계사에 늘 부담을 느꼈던 독자, 혹은 세계사를 통해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세계사를 더 쉽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아주 훌륭한 길잡이인 <12가지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더 이상 잊어버리지 않는 세계사>, 꼭 일독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