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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동물 열전 - 최애, 극혐, 짠내를 오가는 한국 야생의 생존 고수들
곽재식 지음 / 다른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야생버라이어티 #K야생동물 #한국야생동물 #팔도동물열전

사람처럼 행동하며 아름다운 사람을 납치해 간 황금멧돼지는 과연 어떤 괴물이었을까? 유몽인의 시에서는 이 황금멧돼지를 ‘금저’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털이 금색인 멧돼지를 뜻할 수도 있고, 온몸이 황금으로 되어 있는 멧돼지를 뜻할 수도 있다. 금이라는 글자에는 쇠라는 뜻이 있으므로 어쩌면 온 몸이 쇳덩어리로 되어 있는 멧돼지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41 p / <팔도 동물 열전>

무척 흥미롭고 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이 다른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곽재식 작가님의 <팔도 동물 열전>입니다. 곽재식 작가님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이자 SF 소설가입니다. 이력만 보았을 땐 왠지 ‘공학’, ‘과학’에 대한 이야기만 쓸 것 같은데, 이번 책에서는 ‘우리가 놓친 한국 야생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실 저는 작가님의 이력을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 바로 1장부터 읽었는데요. 우리나라 야생동물에 대한 지식이 아주 자세히 들어있고, 한국 고전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생물학, 문학을 전공한 분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한 분이어서 깜짝 놀랐지요. 곽재식 작가님의 관심분야, 독서량, 지식 등이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입니다.

저는 매일 서울로 출퇴근을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요. 아침마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출근을 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왜 이리 좁은 땅덩어리에 사람이 많을까하는 생각까지 들곤 하지요. 그런데 이 책에서 작가님은 정작 한국에 살면서 이 나라를 대자연의 나라로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고 지적해요. 한국 땅의 64% 이상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말이에요. 한국처럼 사람과 가까운 곳에 풍부한 자연이 펼쳐진 나라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고 합니다. 작가님은 일상 속 공간에도 소중한 자연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여덟 가지 야생동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서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저는 출퇴근길에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모습만 보고 우리나라에 엄청난 숲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살았던터라, 작가님의 이러한 기획 의도에 관심이 갔고, 그래서인지 이 책에 푹 빠져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은 고라니, 멧돼지, 여우, 청설모, 너구리, 붉은박쥐, 담비, 반달곰입니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거나 TV에서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는 동물들이 대거 등장했기에 더욱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동물들이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는 이 야생동물들의 생태에 대해서 조사하고 쓴 책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인문학’에 더 가까운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인용된 책들은 <삼국사기>, <동명왕의 노래>, <훈몽자회>, <조선왕조실록> 등과 같이 우리나라의 옛 기록과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치 옛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도 받았어요. 확실히 단순히 공학 공부만 한 분이 아니라 소설도 쓰고 인문학 공부를 한 분이어서 글이 딱딱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글이 아니라,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이 책에 소개된 동물들 모두 흥미로웠지만, 청설모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원도에 청설모와 다람쥐가 유독 많다고 합니다. 청설모는 다람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색깔이 좀 짙은 편이잖아요. 그런데도 묘하게 둘을 구분하는 게 어렵다고 느끼던 차에, 이 책에서 확실히 ‘다람쥐와 청설모’ 구분법을 100쪽~102쪽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청설모와 다람쥐의 행동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다람쥐는 땅속에 굴을 파고 집을 짓지만, 청설모는 땅속이 아니라 나무 중간쯤의 높은 곳에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사람들은 청설모를 유독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다람쥐는 겨울이면 겨울잠을 자며 거의 움직이지 않는 반면, 청설모는 긴 잠을 자지 않고 추운 날씨에도 꿋꿋이 나뭇가지 위를 누비며 겨울을 보낸다고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동물이에요.
박쥐에 대한 글도 무척 흥미로웠어요. 작가님은 ‘박쥐는 어떻게 바이러스에 잘 버텨낼 수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대한 연구와 학계의 의견은 다양하게 엇갈리고 있는데, 작가님은 영국의 생물학자 에밀리 크레이튼이 2020년에 발표한 인터페론 관련 연구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합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박쥐는 인터페론이라는 물질을 뿜어내서 몸속의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그동안 박쥐를 그저 음침하고 무섭고 살짝 징그러운 동물이라고만 생각헀어요. 그런데 박쥐의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 작용이 무척 신비로웠고, 황금박쥐가 비소 성분에 중독되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야기도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나라 야생동물 이야기를 인문학, 과학 지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어요. 동물에 얽힌 전설, 최근 연구까지 나오고 있어서 ‘와, 작가님은 언제 이많은 내용을 공부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듭니다. 야생동물에 대한 책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출판계에 이렇게 의미있는 책이 나왔으니 앞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잊혀져가는, 사라져가는 동물과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앞으로도 환경보호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