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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를 향해 쏴라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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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밤을 끝으로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명우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하염없이 불꽃을 들여다보았다. 장작불은 이제 불꽃을 길게 내뿜으며 활활 타올랐다. 나는 외투 안주머니를 뒤져 얄팍한 지갑을 꺼냈다. 명우가 자조적인 표정으로 내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부조리를 향해 쏴라> / 35 p

강렬한 제목의 소설을 한 권 읽었습니다. 바로 최인 작가님의 <부조리를 향해 쏴라>라는 책인데요. 외국의 철학적인 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이긴 하지만, 가독성이 무척 좋습니다. 두꺼운 장편소설임에도 저는 출퇴근길을 이용하여 3일만에 다 읽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라 '와, 요즘도 이런 소설이 나오는구나!'하고 감탄을 했어요. 이 책을 쓴 최인 작가님은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편 소설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7권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확실히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 작가이셔서 그런지 이번 신작 <부조리를 향해 쏴라>도 저의 기대에 부응하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솔직히 요즘 한국문학을 보면 이야기는 없고 우울한 감정만 나열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역사에 관한 소설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지요. 이런 세태에 역사 소설, 그것도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등장하는 소설이 혜성같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문학은 식상하다, 재미없다라는 편견을 깨줄만한 소설이 나온 것이지요.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듯이, <부조리를 향해 쏴라>의 주인공은 부조리한 사회에 열심히 적응하기도 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대학시절의 대정부투쟁, 비상계엄으로 탄생한 유신정권에 항거하다가 수배자가 되기도 하고,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다가, 사법고시에 도전하기도 하지요. 주인공은 부조리한 삶에 대항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부조리한 역사에 반기를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설의 순서가 역순이라는 점도 특이하고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챕터가 12에서 시작해서 11, 10, ... 1로 가지요. 부조리한 역사, 부조리한 사회, 부조리한 인간이 역순의 시간 속에서 너무나 잘 드러납니다.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잘 배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저는 아픈 현대사를 보았고, 결국 부조리한 삶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부조리, 체제의 부조리는 영원히 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인정'하자는 쪽으로 주제가 흘러갑니다. 작가님은 '부조리한 삶이 없음은 곧 부조리한 사회가 없음을 의미하고, 부조리한 사회가 없음은 곧 부조리한 역사가 없음을 의미한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올해 읽은 장편소설 중에서 <부조리를 향해 쏴라>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일단 제가 관심있는 현대사가 생생하게 그려져서 좋았고, 주인공의 갈등에 몰입하기도 좋았습니다.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