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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인생도 실패는 아니라고 장자가 말했다
한정주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철학과에서 공부하던 시절, 가장 재미있었던 건 노장철학이었다. 서양철학은 지나치게 논리를 따져나갔기 때문에 머리가 아팠지만, 동양철학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노장철학은 내가 추구하는 삶과 비슷해서 더 관심이 갔었다. 그때의 나는 늘 자유를 꿈꾸었고, 그러면서도 구속된 삶을 살면서 늘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졸업을 하고 철학과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노장철학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나서 무척 기대를 했다.
가슴 한 켠에 두었던, 그러나 잊지 못하고 있던 장자철학을 다시 느껴볼 수 있구나 하는 마음에.
한정주 작가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마흔에 읽는 사기 인문학>, <문장의 온도>,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등 인문학 서적을 활발하게 집필하는 고전연구가이다. 그동안 많은 인문학 서적을 집필해 온 작가여서 더욱 신뢰가 갔다. 나는 인문학 서적은 꼭 문사철을 전공한 작가가 집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 역시 전문적인 학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 지식을 뽐내면서 글을 쓴다면, 독자는 지레 질려버리고 말 것이다. 인문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대중의 눈높이에서 쓸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다. 그래서 한정주 작가는 인문학 분야에서 귀한 작가이다.
이번에 한정주 작가가 출간한 신작, <그 어떤 인생도 실패는 아니라고 장자가 말했다>는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훌륭한 책이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장자 철학을 줄줄 나열하거나 설명하는 게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작가가 바라본 장자의 철학을 다루고 있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장자가 아닌, 작가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장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장자의 철학이 "해답의 철학"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장자는 '하나의 장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수천 수만의 장자'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만 담겨있는 책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작가는 장자철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을만큼,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장자 이야기라는 건, 작가의 겸손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장자가 '성심'이라는 개념을 통해 욕망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사색하고 탐구한 족적을 남긴 거의 유일한 동양 사상가라고 평가했다. 프로이트가 '욕망, 꿈, 무의식'의 관계를 밝히기 수천 년 전에 장자는 그 어느 누구도 다가가지 못한 이 영역을 사색하고 탐구했다. 우리는 보통 프로이트는 잘 알고 높게 평가하지만, 장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작가는 독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면서 장자철학을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장자철학을 통해 우리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인생에서 성공, 실패, 슬픔, 기쁨 등 많은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더욱 많은 것들을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삶의 방향을 어떻게 결정할지, 어떤 욕망을 좇으며 살아야할지, 불안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어떻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읽기 편하지만, 사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 인생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저자의 독서량에 감탄을 했다. 동화부터 서양철학까지, 저자가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고, 이 책을 쓰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가령 131쪽에는 장자의 우화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림 형제의 민담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장자철학만 이야기하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저자의 많은 독서량으로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게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나는 모든 내용이 다 좋았지만, 특히 여러가지 주제들 중에서 "불안과 함께 사는 방법"이 가장 와닿았다. 감명깊었던 부분을 소개해보겠다.
"장자는 인간의 삶과 생명을 해치는 인위적인 것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당시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안과 공포의 주범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자신의 몸과 삶과 생명을 해치는 줄도 모르고 권력, 재물, 명예, 출세 등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간 세태가 불안과 공포의 근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25p)"
굳이 정신과에 비싼 진료비를 주지 않아도, 이 책 한권이면 자신의 불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고마운 책이다.
마흔을 앞두고 자기 긍정이 필요한 사람들, 삶을 더 잘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 인문학에 대한 지식욕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정말 멋진 철학책이다. 앞으로도 이런 류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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