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보들은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닐스 타베르니에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평점 :
#우체부슈발 #이상궁전 #닐스타베르니에 #바보들은내가만든것이무엇인지모른다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사람의 창작물이 예술로 인정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이력일까요, 유명한 비평가의 평가일까요, 아니면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 그 자체일까요? <바보들은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를 읽으며 가장 먼저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프랑스의 평범한 우체부가 33년 동안 혼자 지은 건축물이 처음에는 기이한 집착의 결과로 취급되다가 훗날 역사적 기념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더욱 생각해 볼 부분은 건축물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것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판단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예술이고 누가 그것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지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을 쓴 닐스 타베르니에 작가님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연출해 온 프랑스 영화감독입니다.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의 생애를 영화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관련 기록과 개인 자료를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 전기를 집필했습니다. 영화감독이 쓴 전기답게 사건과 인물의 대화가 생생하게 진행되지만, 공문서와 개인 기록 등 구체적인 사료도 중요하게 활용됩니다.

특히 관심을 두고 읽었던 부분은 슈발의 창작이 이루어진 현실적인 환경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먼 거리를 걸으며 우편물을 배달했고, 일을 마친 뒤에는 돌을 모아 궁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이 오직 건축에 대한 열정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는 가족과의 대화, 이주와 생계의 문제, 재산과 생활비에 관한 고민은 그가 감당해야 했던 현실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세부를 접하고 나니 이상 궁전은 세상과 단절된 천재가 만들어 낸 신비로운 작품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상실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작업을 이어 간 한 사람의 삶이 건축물에 축적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시간 쌓아 온 작업의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경험과도 연결되었습니다. 아직 결과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일은 주변에서 그 가능성을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들인 시간보다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성과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슈발이 밤마다 홀로 궁전을 만들면서 남긴 기록 가운데 자신의 수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인정받기를 원했고 자신의 작업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창작자가 타인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이 책에서 한 단계 더 생각하게 된 문제는 예술적 가치와 제도적 인정 사이의 관계입니다. 슈발의 이상 궁전은 오랫동안 전문가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관심과 앙드레 말로의 문화재 지정 결정을 거치며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슈발의 성취를 개인의 의지와 천재성만으로 설명하면 이러한 조건을 놓치기 쉽습니다. 같은 시대에 비슷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기록이나 보존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합니다.
<바보들은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건축과 미술사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독립적인 창작 활동이나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 가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건축 양식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슈발의 삶을 따라가며 창작과 인정, 보존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저의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궁전의 화려한 외형보다 그것을 완성하기까지 슈발이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작품이 훗날 인정받을지는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직 평가받지 못한 창작물의 가능성을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