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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읽는 스페인
백인필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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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곳에 어떤 역사가 쌓여 있는지는 미처 살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스페인은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오랜 시간 충돌하고 교차하면서 독특한 예술적 유산을 형성한 나라입니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세비야의 대성당을 바라보면 한 시대의 건축물이 다른 시대의 건축물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고, 서로의 흔적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술로 읽는 스페인>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러한 건축물과 미술 작품을 통해 스페인의 복잡한 역사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백인필 작가님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오랜 관심을 따라 스페인으로 향했습니다. 이후 8년 동안 현지의 미술관과 문화유산을 탐방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도슨트와 미술사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작품을 직접 마주하고 관람객에게 설명해 온 작가님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안달루시아의 이슬람 건축에서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마드리드의 벨라스케스와 고야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따라 이동하며 예술과 역사를 함께 살펴보는 구성입니다.

특히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을 다룬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사진 속 본문에서는 세비야가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던 시기부터 가톨릭 왕국에 편입된 이후까지의 건축적 변화를 설명합니다. 히랄다 탑은 본래 이슬람 사원의 미나렛이었지만, 이후 가톨릭 성당의 종탑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종교적 기능을 바꾸면서도 이전 시대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입니다. 건축물이 반드시 하나의 시대나 문화만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역사는 이처럼 건물의 외벽과 탑의 구조에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평소 미술관이나 역사적 장소를 방문할 때도 작품에 관한 설명을 읽기 전과 후의 감상은 상당히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색채나 구도, 공간의 규모에 시선이 머물지만, 제작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종교적 의미를 알고 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책에 소개된 알람브라 궁전의 장식도 그러했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문화의 흔적이 한 공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평화로운 공존의 증거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스페인의 이슬람 건축과 가톨릭 건축이 겹쳐진 배경에는 정복과 종교적 갈등, 권력의 교체도 존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하는 문화적 다양성이 당대 사람들에게는 상실과 배제의 경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을 통해 역사를 읽는 일에는 아름다움의 탄생 과정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변형된 것들을 살피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예술로 읽는 스페인>은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은 물론, 미술 작품을 시대적 배경과 연결해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유용하겠습니다. 특히 알람브라와 가우디의 건축을 사진으로만 접했거나 프라도 미술관의 작품을 좀 더 깊이 감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합니다. 여행지에 관한 지식이 늘어날수록 같은 풍경에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스페인의 건축물을 다시 본다면 아름다운 외관뿐 아니라 그 안에 남아 있는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부터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