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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심리학자입니다 - 인생의 길목에서 펼쳐보는 43가지 마음 사전
장성숙 지음 / 스틸당(STEALDANG)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삶을 조금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납니다.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나 예기치 못한 상실, 뒤늦게 찾아오는 후회도 그렇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심리학자입니다>를 읽으며 오래 생각한 것은 고통을 없애는 방법보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삶을 소풍으로 바라본다는 말에는 가벼운 낙관보다 인생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려는 오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장성숙 작가님은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로, 오랫동안 상담 현장에서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살펴왔습니다. 특히 서구에서 발전한 상담 이론을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과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문제를 고민하며 ‘현실역동 상담’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학문적·실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심리 에세이입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로 구성된 글에는 인간관계, 사랑, 상실, 나이 듦, 자기 성찰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심리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한 사람이 긴 세월을 살아오며 만든 삶의 태도를 들려줍니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것은 나이 들어가는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책임을 생각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작가님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맡은 위치에 적절하게 처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과정에서 명쾌한 안목을 갖추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다른 사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다움은 나이나 지위에서 자동으로 얻어지는 권위가 아닙니다.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과 성숙하다는 사실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며 일상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상대의 사정을 쉽게 판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굳이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주변을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후자의 태도를 그저 성격이 온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 역시 의식적인 노력과 절제가 필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작가님이 말하는 ‘유순함’도 이와 연결됩니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유순함은 소극적인 순응이 아니라 관계를 지탱하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다만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강조할 때에는 한 가지 구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 부당한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모든 고통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나 관계의 책임까지 스스로 떠안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러려니’ 하는 태도 역시 무조건 참거나 체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심리학자입니다>는 심리학의 전문 지식을 배우려는 독자보다 인간관계와 삶의 태도를 차분히 돌아보고 싶은 독자에게 잘 어울립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거나, 사람을 대하는 자신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