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가 필요해? : 머리 위의 세계 여행 - 2023 함부르크 그림책상 수상작 꿈터 지식지혜 시리즈 72
카렌 엑스너 지음, 최나현 옮김 / 꿈터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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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가 필요해?>는 제목만 보면 가볍고 유쾌한 그림책처럼 보이지만, 막상 펼쳐보면 ‘머리에 무엇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문화, 신분, 종교, 기술을 함께 읽게 만드는 꽤 영리한 책입니다. 저는 평소 모자와 복식사를 볼 때 단순히 디자인만 보지 않고, 왜 이런 형태가 생겼는지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졌는지를 함께 보는 편인데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모자는 햇빛을 가리는 생활용품이면서 동시에 신분을 표시하고, 공동체의 소속을 드러내며, 때로는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장비이기도 합니다. 머리 위의 작은 물건 하나에 인간 사회가 압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여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카렌 엑스너 작가님은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시각예술과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작가로, 그림을 단순히 ‘그리는’ 대신 오일 파스텔을 칠한 뒤 긁어내는 독특한 스크래치 기법을 활용합니다. 실제 책을 보면 이 방식의 매력이 확실히 느껴집니다. 강렬한 노랑, 분홍, 청록 같은 색이 큰 판형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 거칠면서도 세밀한 선이 겹쳐져 마치 민속박물관과 현대 그래픽 전시를 동시에 보는 듯합니다. 최나현 번역가님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공간디자이너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 이 책의 시각적 성격과 잘 어울리는 번역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림책 특유의 리듬과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실크해트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마술사나 옛 신사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19세기 유럽에서는 한때 남성의 사회적 지위와 품위를 드러내는 중요한 복식이었습니다. 산업화 이후 남성 정장이 점점 표준화되면서 모자는 직업과 계층, 예절을 읽을 수 있는 일종의 사회적 기호가 되었지요. 반면 북미 원주민의 깃털 머리 장식처럼 특정 공동체 안에서 명예와 역할, 의례적 의미를 지닌 장식도 등장합니다. 이런 물건은 단순히 ‘예쁜 전통 모자’로 소비해서는 안 되고, 누가 어떤 상황에서 착용할 수 있었는지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왕관과 군용 헬멧, 터번, 우주비행사의 헬멧까지 한 책에 나란히 놓고 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겉모양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인간은 머리 위에 무언가를 얹으며 자신의 신분을 말하고, 신념을 표현하고, 환경으로부터 몸을 지켜왔다는 공통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의 ‘위에서 내려다본 모자 퀴즈’ 같은 구성도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형태를 관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꽤 잘 만들었다고 느꼈습니다.







저 역시 여행이나 전시에서 전통 복식을 보면 의복보다 먼저 머리 장식에 시선이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몸에 입는 옷은 시대에 따라 비슷한 실용성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머리 장식은 유난히 그 사회의 상징 체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만 생각해도 갓 하나를 두고 신분과 예법, 재료, 장인의 기술까지 여러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유럽의 왕관이나 실크해트, 종교적 베일 역시 비슷합니다. 그래서 <모자가 필요해?>를 읽으며 ‘머리 장식의 역사’를 사실상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바깥으로 표현해온 역사’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투구와 헬멧처럼 생존을 위한 기술까지 더해지면 모자는 문화와 과학이 만나는 물건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린이 지식 그림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생각거리가 적지 않습니다.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처음 접하는 어린이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역사나 사회 과목을 사실 암기처럼 느끼는 아이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은 왜 이런 것을 머리에 썼을까?’라는 질문에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디자인이나 패션, 민속문화에 관심 있는 어른이 아이와 함께 읽기에도 좋고, 박물관이나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가족에게도 잘 맞습니다. 무엇보다 그림이 워낙 강렬해서 글을 다 읽고도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모자가 필요해?>는 결국 모자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작은 모자 하나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역사와 문화와 인간이 보인다는 사실, 그게 이 책이 가장 재미있게 건네는 교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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