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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ㅣ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평점 :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들은 대놓고 서열을 말하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현대사회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말하고, 사람을 지위에 따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현실의 인간관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회사에는 직급이 있고, 학교에는 성적과 학벌이 있으며, 온라인에는 팔로워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취향조차 때로는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서열의 교양>은 우리가 없는 척하면서 매일 참여하고 있는 이 이상한 게임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을 공부하다 보면 권력이 반드시 명령이나 강제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지배’와 ‘위신’을 구별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두려워서 따르는 것과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따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조직에서도 직급 때문에 사람들이 말을 듣는 사람과, 직급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구하는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다루는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취향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책을 읽고, 무엇을 먹고 입는지는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부르디외는 취향 역시 계급과 사회적 위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클래식을 듣고 어려운 책을 읽는 행동조차 때로는 문화적 취향인 동시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보여주는 신호가 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요즘의 SNS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비싼 자동차나 명품처럼 알아보기 쉬운 물건이 지위를 보여주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취향과 경험이 더 정교한 신호가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을 읽는지, 어느 전시를 보는지, 어떤 여행을 하는지까지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기호가 됩니다. 심지어 “나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태도마저 새로운 종류의 자기 과시가 될 수 있으니, 인간의 지위 게임은 참 끈질깁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모든 인간관계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지점은 서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그것에 얼마나 휘둘릴 것인가를 묻는 데 있습니다.
저 역시 조직생활을 하면서 이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말투나 평가에 기분이 상하면 그 내용을 곧바로 ‘나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조직에서 오가는 말 가운데 상당수는 개인의 절대적인 능력에 대한 판정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차지한 자리, 권한,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관계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서열 스트레스 연구가 특히 현실적으로 느껴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서열이 높으냐 낮으냐만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가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지시를 받고, 언제 평가받을지 모르며, 자기 일의 순서를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작은 사건에도 긴장하게 됩니다. 개인의 멘탈이 약해서라기보다 구조가 지속적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긴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서 윌리엄 제임스의 ‘선택된 자아’와 부버의 ‘나와 너’로 넘어가는 구성이 좋았습니다. 모든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학벌에서 이기면 재산이 남고, 재산에서 이기면 외모가 남고, 거기에서도 이기면 인기와 명성이 등장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면 타인의 평가가 내 삶의 기준이 됩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인간에게 비교하지 말라고 순진하게 충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지위를 의식하고 타인의 시선을 살피는 존재라는 사실부터 인정합니다. 그러고 나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게임의 규칙을 아는 것과 그 게임에 인생 전체를 거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나이가 들수록 저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어떤 서열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누가 나보다 앞섰는지 계속 확인하는 삶보다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내 기준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삶이 훨씬 어렵지만 결국 오래갑니다.
산에 오르는 동안에는 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책의 문장처럼, 서열 안에서 정신없이 경쟁하는 동안에는 내가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은 판에서 조금 떨어져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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