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피 - 베로니카 곤살레스 라포르테 장편소설
베로니카 곤살레스 라포르테 지음, 최혜정 옮김 / 슬로우리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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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피>는 처음에는 꽤 기묘한 소설처럼 느껴졌습니다. 팬데믹 시기의 한국, 성형외과 의사, AI 리얼돌, 무속신앙까지 등장합니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들이 한꺼번에 섞여 있는데, 읽다 보면 완벽하게 만들어진 대상과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주인공 지호는 현실의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데 계속 실패한 뒤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구현한 AI 리얼돌 ‘성미’를 만듭니다. 성미는 현실의 연인과 달리 지호를 실망시키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과 불편함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아주 편안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바로 그 지점이 섬뜩했습니다. 상대가 나를 거절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며, 내 욕망에 맞춰 반응한다면 그것은 정말 사랑일까요. 






특히 “이 세상에 완벽한 관계가 어디 있어.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타인을 완전히 알 수는 없는 거야”라는 대목이 이 소설의 핵심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 인간관계를 겪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고, 가까웠던 사람과도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관계가 끝난 뒤에야 ‘나는 저 사람을 정말 알고 있었던 걸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이 꽤 기묘했음에도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성미는 지호에게 가장 완벽한 연인이면서 가장 완벽하게 외로운 관계입니다. 타인에게는 나와 다른 욕망과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삭제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아본 사람이라면 잠깐은 지호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사람 때문에 지칠 때면 “그냥 나랑 완벽하게 맞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해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나와 완벽하게 맞는 존재란 결국 나에게 맞춰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편안함은 얻을 수 있어도 진짜 타인을 만날 가능성까지 사라집니다.


이 소설이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한국 사회의 풍경 속에 집어넣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작가가 한국에서 6년 동안 생활하며 관찰한 사회라서인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지나치는 장면들이 조금 낯설게 보입니다. 성형외과와 미용 산업, 획일화된 아름다움, 첨단 기술, 코로나19의 봉쇄와 감염 공포, 무속신앙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합니다. 스마트 뷰티와 AI가 등장하는 초현대적인 사회에서 누군가는 무당에게 운명을 묻습니다. 처음에는 이 조합이 다소 엉뚱하게 느껴졌는데,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한국 사회의 묘하게 익숙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최신 기술을 믿으면서 동시에 운세를 보고, 과학적 의료를 받으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설명할 수 없는 징조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성형외과라는 공간 역시 절묘합니다. 피부와 얼굴을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는 공간에서 지호는 급기야 자신의 욕망에 맞는 연인까지 만들어냅니다. 외모도 관계도 기술로 수정할 수 있다면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소설은 계속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기술이 인간의 외로움을 완전히 해결해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AI가 점점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인간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시대가 되어도, 인간관계의 본질에는 여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타인이 존재합니다. 


<박피>는 편안하게 읽고 덮는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기괴하고, 불편하고, 때로는 “이게 어디까지 가는 거지?” 싶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 자체가 꽤 오래 남았습니다. 이 소설은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존재와도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재미있게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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