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건너는 트릉카 다방 트릉카 다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임희선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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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억을 건너는 트릉카 다방>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트릉카 다방같은 장소가 하나쯤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꼭 실제 카페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래 다니던 서점이나 혼자 걷던 골목,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처럼 시간이 지난 뒤 떠올렸을 때 그때의 공기와 감정까지 함께 돌아오는 무언가 말입니다. 이 소설 속 트릉카 다방도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은 커피만 마시러 오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저는 원래 사람이 장소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은데, 생각해 보면 기억이라는 것도 머릿속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기보다 냄새나 계절, 음악 같은 사소한 계기로 갑자기 되살아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다방과 커피 향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이 소설의 분위기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기억에 남은 인물은 치요코 할머니였습니다. 치요코가 어린 시절 병약했던 오라버니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이 부분이 유난히 오래 남았습니다. 병실처럼 답답한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던 오라버니를 위해 창문을 열자 파란 가을 하늘과 바람이 들어오고, 순간적으로 오라버니의 얼굴이 환해지는 장면입니다. 정말 사소한 기억입니다. 대단한 사건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람이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 딱 이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같이 먹었던 음식이나 별것 아닌 농담, 어느 날 유난히 좋았던 날씨처럼 당시에는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선명하게 남습니다. 치요코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저 역시 자연스럽게 오래전에 알았던 사람들과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과거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마음을 만들어온 시간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제목의 기억을 건너는이라는 표현도 좋았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지나 다시 지금의 삶으로 건너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 좋았던 것은 이 소설이 사람의 상처를 지나치게 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즈쿠짱을 둘러싼 가족들의 걱정이나 병과 치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 속에는 아이들의 웃음과 농담, 서로를 챙기는 사람들의 일상이 함께 있습니다. 저는 슬픈 이야기를 무조건 슬프게 밀어붙이는 작품보다 이런 소설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 편입니다. 실제 삶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힘든 일이 있다고 해서 하루 종일 울고만 사는 것은 아니고, 그 와중에도 밥을 먹고 농담을 하고 누군가에게 짜증을 냈다가 또 웃습니다. 트릉카 다방의 사람들도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들어주고, 커피를 내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여기 와서 하소연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다음부터 손님으로 오면 돈은 제대로 받겠다는 농담도 덧붙입니다. 이런 식의 위로가 저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책에는 커피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그 대목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것을 빠르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필요한 정보도 바로 찾고, 주문한 물건도 빨리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기억이나 상처는 그렇게 처리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잊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며, 이미 지나간 일을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커피를 기다리는 과정까지 한 잔의 커피에 포함되듯이 우리가 어떤 감정을 천천히 지나가는 시간 역시 삶에서 빼버릴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누구의 인생에나 틀림없이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이 있을 거예요라는 문장도 그래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기적은 거대한 성공이 아니라 어느 날 누군가와 나눈 대화, 힘들 때 찾아갈 수 있었던 장소, 자신을 기억해 주는 한 사람 같은 것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기억을 건너는 트릉카 다방>을 다 읽고 나서는 커피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생각났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나에게 닥쳐온다 해도 오늘 이날을 기억하면 나는 틀림없이 괜찮을 거다라는 문장처럼, 사람은 미래에 대한 희망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을 꺼내며 버티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에게도 힘들 때 생각하면 이상하게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 시간이 훗날 이렇게 중요해질 줄 몰랐을 것입니다. 야기사와 사토시의 소설은 거대한 사건보다 사람과 장소가 조금씩 정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저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트릉카 다방도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은 아니지만, 문을 나설 때 다시 살아볼 마음 정도는 만들어주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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