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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과 4분의 3의 슬픔
폴커 주어만 지음, 김시형 옮김 / 삐삐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청소년기를 떠올리면 저는 먼저 ‘복잡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돌아보면 별일 아닌 것 같은 일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고, 당시에는 왜 그렇게 불안하고 예민했는지 스스로도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그 시절을 쉽게 ‘사춘기였으니까’라고 정리할 수 있지만, 막상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감정 하나하나가 너무 크고 선명했습니다.

폴커 주어만의 <13과 4분의 3의 슬픔>은 바로 그 시기의 감정을 꽤 정확하게 건드리는 청소년 소설입니다. 제목부터 조금 우습고 이상합니다. ‘13과 4분의 3’이라는 애매한 나이와 ‘슬픔’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 조합이 오히려 사춘기를 꽤 잘 설명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세상이 낯선 나이. 감정은 넘치는데 그 감정을 설명할 언어는 충분하지 않은 시기입니다.

주인공 레온에게 사춘기는 흔히 떠올리는 반항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대신 이유 없는 슬픔과 눈물로 찾아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여드름이 나는데 자신은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장면은 우습지만 동시에 묘하게 아픕니다. 청소년기의 우울과 불안을 지나치게 비장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가볍게 넘기지도 않습니다.

저는 책 속에서 ‘오리무중’이라는 장면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레온은 이메일을 보내 놓고 매일 답장을 확인하지만 아무 소식도 받지 못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짧지만, 그 나이에는 그런 사소한 일이 이상할 정도로 크게 느껴집니다. 저도 청소년기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답장 하나, 친구의 표정 하나를 지금보다 훨씬 오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세상의 중심이 아주 좁았기 때문에 작은 사건 하나가 하루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곤 했습니다.
‘진척이 있다’ 장에서 레온과 루벤이 인터넷을 뒤지고, SNS를 검색하고,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가는 장면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수행평가 때문에 시작된 일이 점점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추적하는 일이 됩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종종 아주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예상하지 못한 세계로 이어지곤 합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탐색이 그들에게는 자기 세계를 넓히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 소설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 청소년을 ‘미성숙해서 가르쳐야 하는 존재’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레온과 루벤은 죽음과 애도, 인간의 상처에 대해 오히려 어른들보다 집요하게 질문합니다. 학교 근처 교차로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의 주인을 알아보려는 행동도 처음에는 수행평가를 위한 것이지만, 결국 한 사람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사라지는가를 묻는 일이 됩니다.
책 속 레온은 자기 안의 슬픔을 가득 찬 잔에 비유합니다. 평소에는 가까스로 넘치지 않고 버티지만, 아주 작은 일 하나가 더해지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읽으며 청소년기의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그 정도 일로 왜 그렇게 힘들어하지?’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마지막 한 방울이 아니라 이미 잔에 가득 차 있던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청소년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을 혼자 생각했습니다. 친구 관계, 진로, 공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같은 문제들이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를 만난다면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말을 듣는다고 당시의 제가 쉽게 안심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감정은 설명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나가야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레온과 루벤의 관계가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완전히 해결해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대신 함께 조사하고, 같이 걷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웃습니다. 결국 슬픔을 견디게 하는 것은 완벽한 해답보다 옆에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거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작품 전체가 지나치게 침울하지 않은 것도 좋았습니다. 두 소년이 공동묘지를 찾아다니면서 농담을 하고, 무서워하면서도 계속 걸어가는 장면도 서평을 쓰는 지금, 기억이 납니다. 죽음이나 우울을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습니다. 실제 삶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에도 사람은 밥을 먹고, 엉뚱한 농담을 하고, 친구 때문에 웃습니다. 슬픔과 웃음은 생각보다 자주 같은 하루 안에 존재합니다.
이 작품이 독일 교육 현장에서 윤리나 종교 수업 자료로 활용된다는 점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죽음이나 우울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단순한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된 뒤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부끄럽거나 유치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13과 4분의 3의 슬픔>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감정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청소년기를 생각나게 만드는, 꽤 멋진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