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레이디가가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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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오 슈스케는 일본 미스터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오키상을 비롯해 본격미스터리대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을 수상했으며, 서술트릭과 인간 심리를 절묘하게 결합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I>는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반전과도 조금 다르다. 사건의 범인을 맞히는 재미보다 '읽는 행위 자체'를 소설의 장치로 만들어 버린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독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어느 장부터 읽을지를 지금 결정하십시오."라는 문장이다. 보통 소설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I>는 독자가 시작 순서를 선택해야 한다. 본문은 똑같지만 어느 장을 먼저 읽느냐에 따라 주인공은 살아남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이야기의 내용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인식이 바뀌면서 결말이 달라지는 구조라는 점이 무척 신선했다.





읽는 내내 '정말 같은 문장을 읽고 있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우리는 흔히 결말은 작가가 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독자가 순서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같은 사건도 먼저 무엇을 알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보여 준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발상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페트리코'와 '지오스민'이라는 제목이다. 비가 내릴 때와 비가 그친 뒤 흙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뜻하는 단어를 중심으로 두 이야기가 맞물리게 된다. 미치오 슈스케 특유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더해져 추리소설이면서도 문학적인 여운이 길게 남는다.


나는 평소 책을 읽을 때 이야기뿐 아니라 작품의 구조와 장치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특히 웹소설을 쓰고 번역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I>는 내용보다도 형식 자체가 큰 자극을 주었다. 이야기를 잘 쓰는 것과 이야기를 어떻게 읽게 만들 것인가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독자의 선택 하나만으로 같은 문장이 완전히 다른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무척 훌륭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호불호는 있을 수 있다. 정통 추리소설처럼 치밀한 수사와 사건 해결을 기대한다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독서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만족할 작품이다. 책을 덮고 나면 범인이 누구였는지보다 "내가 왜 이런 결말을 받아들였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I>는 단순한 반전 소설이 아니다. 독자의 선입견과 선택, 그리고 읽는 순서마저 이야기의 일부로 끌어들인 보기 드문 실험작이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독자는 관찰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완성하는 공범이 된다. 오랜만에 '소설은 아직도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구나'라는 즐거운 충격을 안겨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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