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격동하는 미중 패권 전쟁과 대분열의 시대 - 누가 새로운 승자가 될 것인가
닐 시어링 지음, 임경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다룬 책은 대개 결론부터 정해져 있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과 중국 경제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번갈아 등장한다. 제목은 거창하고 세계는 당장이라도 두 쪽 날 것처럼 묘사되지만, 읽고 나면 정작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격동하는 미중 패권 전쟁과 대분열의 시대>는 이런 과장된 승패 예측보다 세계 경제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분리되고 재편되는지를 차분하게 추적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미중 갈등이 두 나라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이 자체 기술 개발에 투자하면, 그 영향은 반도체 기업과 전기차 산업뿐 아니라 원자재 수출국, 신흥국의 제조업, 노동시장과 소비자의 생활비에까지 이어진다. 지도 위에서는 워싱턴과 베이징이 대립하지만, 실제 충격은 공급망 곳곳에 흩어져 전달된다. 세계 경제는 거대한 그물망이라 어느 한쪽의 줄을 당기면 예상하지 못한 곳까지 흔들린다.

특히 중국의 성장 과정과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을 함께 다룬 부분이 인상 깊었다. 과거 아시아의 제조업 생산기지는 일본에서 한국과 대만으로, 다시 중국으로 이동했다. 중국 역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생산기지에 머물지 않고 기술과 자본을 축적하며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로 성장했다. 반면 자원 수출에 크게 의존했던 일부 국가는 세계 시장의 호황이 끝나자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국가의 장기적인 경쟁력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기술과 산업 구조를 얼마나 깊게 쌓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기술이 핵심 전장이 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전기차, 배터리, 통신망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가의 군사력과 산업 생산, 정보 통제 능력을 동시에 결정한다. 책에 나온 사물인터넷과 이중 용도 기술에 관한 설명을 읽으며 오늘날에는 민간 기술과 군사 기술의 경계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평소에는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전쟁이 벌어지면 군사 장비에 사용될 수 있다. 그래서 기술 규제는 경제정책인 동시에 안보정책이 된다.
다만 저자는 세계가 냉전 시대처럼 완전히 두 진영으로 나뉠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여전히 거대한 무역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기업들도 정치적 구호처럼 하루아침에 생산시설을 옮길 수 없다. 비용과 인력, 시장과 기술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세계는 완전한 단절보다는 분야별 선택적 분리, 즉 필요한 영역에서는 거래하면서 전략 산업에서는 벽을 세우는 형태에 가까울 것이다.
한국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안보는 미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며 공급망의 핵심 국가다. 어느 한쪽을 단순하게 선택하라는 주장은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현실적인 전략은 아니다. 외교적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산업 구조와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추는 일이다. 남의 패권에 줄을 서는 것만으로는 우리 몫을 지킬 수 없다. 결국 선택권은 기술과 생산 능력을 가진 나라에게 주어진다.
나는 퇴사 후 사업을 준비하면서 거대한 경제 질서의 변화도 결국 개인의 삶에 스며든다는 사실을 자주 생각한다. 환율과 물가, 온라인 플랫폼의 정책도 세계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은 국제정세를 먼 나라 정상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 어떤 분야를 공부하고 어떤 능력을 축적해야 하는지와 연결된 현실로 보게 했다.
미중 경쟁의 최종 승자를 정확히 예측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효율성만큼 회복력과 선택권이 중요해진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한곳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 여러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세계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안보와 기술,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중이다. 이 책은 그 복잡한 변화를 공포로 과장하지도, 낙관으로 덮지도 않는다. 대신 판 자체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금 읽어둘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