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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지브리 - 지브리를 통해 만나는 불교의 지혜
스즈키 도시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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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오래 좋아해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게 됩니다. 왜 지브리 영화는 선악을 쉽게 가르지 않고, 답을 명확하게 내리지 않는데도 오래 마음에 남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선과 지브리>는 그 이유를 불교, 그중에서도 선(禪)으로 설명하는 책입니다. 스즈키 도시오 작가님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거의 모든 대표작을 함께 만들어 온 프로듀서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곁에서 40년 가까이 창작의 현장을 지켜본 인물입니다. 이 책은 세 명의 선승과 나눈 대담을 엮은 기록이지만, 딱딱한 종교 서적이라기보다 창작과 삶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입니다.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옮긴 민경욱 번역가님의 번역 덕분에 대화 편안하게 읽혀서 좋았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특히 영화 <바람이 분다>의 캐치카피인 "살아야."에 담긴 의미에 대한 내용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스즈키 작가님은 이것이 거창한 희망의 구호가 아니라 "힘든 일이 정말 많지만 그래도 살아야."라는 조용한 격려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문장이 지브리 영화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지브리에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미화하는 인물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두렵고, 흔들리고, 실패하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있는 그대로 보기' 역시 현실을 부정하거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조금 내려놓고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지브리 영화 속 '여백'과 선의 '비움'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대담에서도 "과거와 미래보다 지금을 생각한다", "무조건 '네'라고 받아들이는 태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이는 선이 말하는 현재성의 실천을 창작과 일상으로 옮겨 놓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책의 메시지가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계산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인데, 정작 눈앞의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자주 느낍니다. 책에서 "너무 꿈만 꾸면 혹독한 일을 당한다", "눈앞의 일을 조금씩 처리하는 인생이 자신에게 맞았다"는 고백은 의외로 담백해서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집착을 내려놓는 과정으로 설명하지만, 현대 심리학에서도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는 마음챙김(Mindfulness)의 핵심으로 이야기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수행법을 설명하기보다 창작자의 경험을 통해 같은 결론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믿지 않는 독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선불교의 철학을 배우는 책이라기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콘텐츠 제작자가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거치며 얻은 사고방식을 듣는 느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즈키 작가님이 "정말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전해지면 된다."고 말하는 부분도 꽤 흥미롭게 읽은 부분입니다. 오늘날은 조회 수와 판매량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시대처럼 보이지만, 선은 언제나 숫자보다 본질을 먼저 봅니다. 지브리 영화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그 출발점은 대중의 취향을 계산하기보다 자신들이 믿는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였다는 점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이는 일본 문화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선종 전통이나 조계종에서 강조하는 '간화선' 역시 결국은 밖에서 답을 찾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수행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선과 지브리>는 이런 동아시아 사상의 공통된 흐름을 어렵지 않은 언어로 체감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지브리 팬이라면 물론이고, 불교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입문서가 너무 어렵게 느껴졌던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또한 창작을 하는 사람, 일에 지쳤지만 거창한 성공담보다 현실적인 위로를 찾는 사람에게도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저도 이 책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얻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