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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걸었다
메덩골정원 지음, 박찬국 감수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6년 6월
평점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걸었다>는 니체를 해설하는 철학 입문서도, 메덩골정원을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도 아닙니다. 오히려 둘을 하나의 산책으로 엮어낸 독특한 인문학 산문집입니다. 이 책은 환생한 니체가 1인칭 화자가 되어 한국의 메덩골정원을 걸으며 자신의 철학을 다시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저자인 메덩골정원은 경기도 양평에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인문학 정원을 운영하며 자연과 철학, 예술을 결합한 공간을 만들어 온 단체이고, 감수를 맡은 박찬국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국내 니체 연구를 대표하는 철학자입니다. 특히 <니체와 불교>, <니체와 하이데거> 등으로 잘 알려진 연구자답게 니체 철학의 핵심을 왜곡 없이 녹여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갔습니다. 니체를 어렵고 난해한 철학자로만 기억했던 독자라면 의외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니체의 철학을 '걷는 철학'으로 썼다는 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포인트였습니다. 이 책에서 니체는 "철학은 머리로만 하는 학문이 아니라 몸으로 사유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병약했던 자신이 걷기를 통해 사유를 완성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니체는 평생 심한 두통과 위장병, 시력 저하에 시달렸지만 하루 수 시간씩 산을 걸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우상의 황혼> 같은 대표작을 구상했습니다. 그의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는 동안 떠오른다"는 유명한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책에서 반복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니체가 평생 던졌던 삶의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철학을 정답을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도록 만드는 실천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이 메덩골정원의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철학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하는 풍경처럼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철학책을 읽을 때는 책상 앞보다 산책하면서 더 오래 생각하는 편입니다.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할 때도 어려운 개념은 계속 걸으면서 곱씹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무척 공감 갔습니다. 특히 "삶을 누군가 대신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본문의 문장은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운명애는 단순히 현실을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라, 주어진 삶 전체를 긍정하고 자신의 선택으로 다시 사랑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처럼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일수록 니체의 철학이 다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희망을 약속한 철학자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고 넘어서는 힘을 이야기한 철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디오니소스를 '춤추는 별들의 축제'라는 공간으로 쓴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니체에게 디오니소스는 단순한 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의 신이 아니라, 생명의 넘치는 힘과 창조, 고통마저 긍정하는 존재입니다. 그는 <비극의 탄생>에서 질서와 이성을 상징하는 아폴론과 생명력과 열정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의 긴장 속에서 위대한 예술이 탄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책 속 마지막에 등장하는 "세상에 원래부터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돌보고, 책임을 지기로 결단할 때 비로소 그것은 우리 삶의 본질이 됩니다."라는 문장 역시 니체의 가치 창조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표현처럼 읽혔습니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니체의 철학이 저에게 절실히 와닿았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걸었다>는 니체를 처음 접하는 독자부터 철학을 좋아하는 독자까지 폭넓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기존의 니체 입문서처럼 개념을 조목조목 설명하기보다 자연과 공간, 예술을 통해 철학을 체험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니체를 어느 정도 읽어본 독자라면 니체의 철학이 한국적 풍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삶의 방향을 다시 묻고 싶은 사람, 철학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걸었다>는 좋은 철학책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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