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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은 언제나 내편
박현옥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5월
평점 :
#제주도여행 #여행에세이 #여행기 #제주오름 #오름은언제나내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름은 언제나 내편>은 제주의 오름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사람과 자연이 서로 함께 만든 곳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멋진 여행 에세이입니다. 저자인 박현옥 작가님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교육 현장에 몸담았으며, 제주 정착 후에는 문화탐방지도사를 공부하고 제주문화유산돌봄센터에서 일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 단단한 이력이 책의 깊이를 고스란히 말해줍니다. 단순히 "여기 예쁘니 꼭 가보세요"라고 권하는 가벼운 안내서가 아닙니다. 직접 발로 걷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현지 사람들을 만나며 체득한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인문 에세이처럼 묵직하게 읽힙니다.

사실 저는 아직 제주도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생활 속에서 여행을 떠나기란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체력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허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퇴근 후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유독 달게 느껴졌습니다. 비록 몸은 방에 묶여 있지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잠깐이나마 일상을 벗어나 낯선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오름’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그전까지는 막연히 제주에 있는 작은 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오름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었습니다. 제주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신화, 역사, 그리고 독특한 자연 생태가 들어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가본 적 없는 곳인데, 책장을 덮을 때쯤엔 이미 그 길을 한번 걸어본 것 같은 묘한 친숙함이 남았습니다.
작가님은 요즘 아이들이 “알고 오르면 한 곳을 올라도 백 가지가 보이고, 모르고 오르면 백 곳을 올라도 하나밖에 보지 못한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썼다고 합니다. 이 문장이야말로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완벽히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여행은 얼마나 많이 다녔느냐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니 말입니다.
책 곳곳에는 오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름을 올랐던 부모의 기억, 제주의 자연을 지키고 싶은 마음 등이 담담하게 이어지는데, 이를 통해 오름이 그저 나 혼자 감상하고 오는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기억과 삶이 모이는 따뜻한 광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감을 통해 오름을 느끼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쉬게 되었습니다. 결에 닿는 바람의 촉감, 바다 냄새와는 또 다른 상쾌한 공기, 풀잎들이 서로 부대끼며 내는 사각거림, 그리고 낡은 정자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까지. 묘사가 어찌나 구체적이고 생생한지 여행 에세이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아직 제주 땅을 밟아보지 못한 저조차도 그 문장을 읽는 동안만큼은 오름 꼭대기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직장생활에 치여 몸은 쉽게 떠나지 못해도, 마음만큼은 이미 제주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언젠가 정말 제주에 가게 된다면, 남들이 다 가는 유명한 카페나 SNS 인증샷 명소 대신 오름 하나를 골라 온종일 천천히 걸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의 진짜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오름은 언제나 내편>은 제주 여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저처럼 상상으로 먼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책입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관광지 순례보다 한 장소를 천천히,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