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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여러 강의와 책에서 반복해서 만났던 고전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도 끝내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 사람. 그 사실만으로도 프랭클은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의 저는 프랭클을 이해했다기보다 공부했습니다.

반면 <죽음의 수용소 이후>를 읽은 지금은 조금 달랐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 역시 이별을 겪었고, 직장생활의 답답함도 경험했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도 보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그의 문장이 지식이 아니라 삶의 언어처럼 다가왔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했던 문장은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랭클은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전쟁과 수용소가 아우슈비츠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상실이나 질병, 실패와 외로움이 아우슈비츠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겪었느냐보다 그 상황 속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지난 몇 년이 떠올랐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 한마디에 오래 상처받았던 순간도 있었고,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이 무너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주로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쩌면 이 질문이야말로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문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존적 공허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프랭클은 인간이 불행해서만 병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병든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책 속 이야기라기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도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표를 이루어도 공허하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번역을 공부하고, 글을 쓰고, 앞으로의 길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찾고 있는 것은 돈이나 성과만이 아니라,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프랭클은 피할 수 있는 고통이라면 당연히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인간에게 마지막 자유가 남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입니다. 사실 이 말은 워낙 유명해서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우슈비츠를 통과한 사람이 하는 말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가족을 잃고, 인간의 가장 잔혹한 모습을 본 사람이 끝내 삶의 의미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증언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철학책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같은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듭니다. 읽고 나서 당장 마음이 편해지는 책은 아닙니다. 대신 오래 남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고, 문득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