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평점 :
미출간


 #장편소설 #데니스존슨 #삶의의미 #생의형벌 #생의은총 #마지막유산 #바다여인의선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때는 삶이 길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끝없이 많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반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덧 나이가 눈에 띄게 들어오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과의 추억이 늘어나고, 젊은 시절의 기억들이 점점 멀어진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바다 여인의 선물》은 바로 그런 시기에 읽으면 더욱 깊이 다가오는 소설집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데니스 존슨 작가님은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예수의 아들》과 《기차의 꿈》으로 이미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인간의 상처와 구원, 삶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남아 있는 희미한 빛을 누구보다도 시적으로 그려낸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님이 간암 투병 중 병상에서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생의 마지막에 유언을 남기지만, 어떤 작가는 소설을 남깁니다. 데니스 존슨 작가님은 후자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번역은 《스토너》, 《분노의 포도》 등을 우리말로 옮긴 김승욱 번역가님이 맡았습니다. 저는 번역서를 선택할 때 프로필도 꼭 확인하는 편인데, 김승욱 번역가님이셔서 믿고 읽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알코올중독자, 실패한 중년 남성, 기억이 흐릿해진 노년의 인물들처럼 사회의 중심에서 조금 비껴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다 보면 그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들이 그런 자리에서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소설 속 인물에게서 특별함이나 성장 서사를 찾곤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평범한 하루를 견디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혼란과 외로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우연들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삶을 해석하거나 정리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책에서 교훈을 기대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데니스 존슨 작가님은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습니다. 대신 삶 자체가 원래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돌이켜보면 실제 인생도 그렇습니다. 왜 그때 그 사람을 만났는지, 왜 어떤 선택은 성공하고 어떤 선택은 실패했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기억하고, 잊어버리고, 다시 살아갑니다. 이 책은 그런 인간 존재의 불가해함을 담담하게 응시합니다.


저는 사실 순문학보다 웹소설을 더 즐겨읽는 편이고, 줄거리가 밋밋한 소설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순문학 스타일임에도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문장 하나, 장면 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다보니, 마음에 커다란 슬픔이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문장은 마치 꿈을 꾸다 깨어난 직후의 감각처럼 설명할 수 없지만 오래 남기도 했습니다.


《바다 여인의 선물》은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삶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을 때, 혹은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시기에 만난다면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입니다. 특히 인간의 고독과 죽음, 기억과 시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이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분명 깊은 울림을 받을 것입니다. 책을 덮고 나니 결국 삶이란 거대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을 조용히 품고 살아가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