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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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책은 이야기를 읽는 것보다 한 시절을 통과하는 경험에 가깝게 다가옵니다. 벤자민 마이어스 작가님의 <수평선 너머>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온 벤자민 마이어스 작가님은 자연과 인간, 삶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국내판은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최리외 번역가님이 우리말로 옮겼는데, 원작의 서정성과 따뜻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살려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소설은 전쟁 직후 영국의 탄광촌에서 자란 열여섯 살 소년 로버트의 이야기입니다. 대를 이어 광부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느 날 충동적으로 길을 떠나고, 해안가에서 혼자 살아가는 노부인 덜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름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얼핏 보면 성장소설의 전형적인 구조처럼 보이지만, <수평선 너머>가 특별한 이유는 성장의 과정을 경쟁이나 성공이 아닌 '만남'을 통해 그려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덜시는 로버트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것이 조언이 아니라 존재 자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저의 경험도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이후에도 책과 언어를 가까이하며 살아왔지만 처음부터 문학이 제 삶의 일부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느 순간 우연히 만난 책 한 권, 어떤 문장 하나, 어떤 작가의 세계가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은 거창한 결심보다도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사람이나 책을 만났을 때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문학을 배우고,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유난히 깊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문학이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소년이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독서가 가진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따뜻함입니다. 최근의 많은 소설들이 냉소와 불안, 갈등을 통해 현실을 보여준다면, <수평선 너머>는 친절과 다정함 또한 충분히 훌륭한 소설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맥스 포터가 "이 시대에 이토록 따뜻한 소설을 쓰는 것은 급진적인 일"이라고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요즘 소설 신간은 많이 나오지만, 딱히 마음에 깊이 남는 작품은 없다고 느꼈는데, 오랜만에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었습니다.

 

<수평선 너머>는 화려한 사건이나 강한 반전이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대신 한 사람의 인생이 조용히 방향을 바꾸는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진로와 미래를 고민하는 청소년은 물론이고, 지금의 삶이 전부인지 문득 의문이 드는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특히 책을 좋아하거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로버트가 문학을 통해 세계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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