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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잡지를 읽다 - 『동광』 창간 100주년, 그리고 『새벽』, ‘금요강좌’
이만근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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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거대한 시간 속에서 수많은 기록이 남습니다. 어떤 기록은 우리 민족의 심장 박동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도 합니다. 이번에 만난 <시대의 잡지를 읽다>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지성사의 굵직한 궤적을 그려온 잡지 <동광>과 <새벽>, 그리고 ‘금요강좌’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소중한 기록물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신 이만근 작가님은 1964년 흥사단 입단 이후 평생을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무실역행’ 정신으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도산아카데미 등에서 우리 사회의 정신적 가치를 일깨워오신 작가님의 필치에는, 단순히 자료를 나열하는 학술적 접근을 넘어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사명감이 묻어납니다.

이 책은 1926년 창간된 <동광>이 일제의 모진 탄압 속에서도 어떻게 민족의 각성을 촉구했는지, 그리고 그 정신이 전후 <새벽>으로 이어져 어떻게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잡지라는 매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당대 지식인들이 사상과 문학, 심지어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소통하던 ‘플랫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동광>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원자력 발전의 태동이 소개되었다는 대목은 당시 지성인들이 독립 이후의 근대 국가 건설을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광수, 최서해부터 이어령, 함석헌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거장들의 초기 목소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한국 근대 문학사를 공부하며 <동광>이라는 이름은 수없이 접했지만, 그 구체적인 목차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늘 막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이 검열에 맞서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 그 엄중한 무게감을, 저는 평화로운 강의실에서 교과서의 짧은 주석으로만 소비했던 셈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과거의 잡지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내던 사람들의 치열한 ‘호흡’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문학적 감수성과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고민하던 선배 지성인들의 흔적은, 오늘날 디지털 홍수 속에서 가벼운 텍스트만을 생산하는 우리 세대에게 묵직한 경종을 울립니다.

흥미로운 점은 ‘금요강좌’에 대한 기록입니다. 반세기 동안 1,400여 회나 이어졌다는 이 강좌는 한국 시민 교육의 효시라 할 만합니다. 정보가 귀하던 시절, 금요일 저녁마다 모여 앉아 민주주의와 철학을 논하던 시민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인문학 열풍과는 그 절실함의 종류가 다를 것입니다. 이는 서구의 살롱 문화나 프랑스의 ‘대학 대중 강의’와도 맥을 같이 하지만, 우리에게는 국가를 되찾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는 실천적 의지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였습니다. 작가님은 이러한 잡지와 강좌를 관통하는 핵심을 도산의 ‘애기애타(愛己愛他)’ 정신으로 꼽습니다.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고, 각자의 실력을 배양하여 사회에 헌신하는 마음이 결국 우리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었음을 역설합니다.
<시대의 잡지를 읽다>는 한국 근현대 지성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물론,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잃어가는 ‘정신적 지주’를 찾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크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고민하는 청년들이라면, 100년 전 선배들이 활자를 통해 어떻게 시대를 일깨웠는지 그 지혜를 반드시 엿보길 바랍니다.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과거의 기록들이 현재의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유산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서가 한편에 두고 오래도록 되새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잊혔던 기록을 생생한 생명력으로 되살려준 작가님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