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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한비자를 만나다 ㅣ 나의 첫 인문고전 10
홍종의 지음, 임미란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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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한비자를 만나다>는 “법과 질서”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를 아이들의 생활 속 갈등으로 끌어내어 따뜻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사실 <한비자>라고 하면 흔히 냉혹한 법가 사상, 통치술, 권위 같은 이미지부터 떠오르지요. 그런데 홍종의 작가님은 이 고전을 아이들의 가족 이야기 안으로 자연스럽게 옮겨놓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독자들은 “법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추상적인 정치 이론이 아니라, 자기 방 정리와 형제 싸움, 친구 관계 같은 현실의 문제로 체감하게 됩니다. 아동문학이 가진 생활 밀착형 상상력과 동양고전의 철학적 깊이가 꽤 안정적으로 결합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종의 작가님은 오랫동안 동화를 써 오며 인간의 성장과 공동체의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분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 같은 교훈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복잡함을 보여 줍니다. 특히 “자애로운 어머니 슬하에는 불량한 자식이 있다”는 <한비자>의 구절을 가족 서사에 연결한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흔히 규칙보다 감정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규칙이야말로 서로를 덜 상처 입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꽤 인상 깊었습니다. 법가 사상이 흔히 차갑게 오해되지만, 사실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굴러가게 만들기 위한 현실적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제 어린 시절도 떠올랐습니다. 가족 안에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넘어가던 일들이 오히려 더 큰 싸움으로 번졌던 경험이 있었거든요. 역할이 불분명하고 기준이 없으면 결국 누군가는 계속 참고, 누군가는 계속 어지럽히게 됩니다. 책 속 한비가 집안 규칙을 세우며 처음에는 미움도 사고 갈등도 겪지만, 결국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꽤 현실적이었습니다. 특히 한비가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라는 점도 좋았습니다. 보통 리더십 서사에서는 완벽하고 말 잘하는 아이가 중심이 되기 쉬운데, 이 작품은 오히려 불안과 결핍을 가진 아이가 질서의 필요성을 더 절실히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약점이 반드시 무능함은 아니라는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전해집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단순한 “고전 학습 동화”를 넘어 사회정서학습(SEL)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교육에서는 자기조절, 관계 맺기, 책임 있는 의사결정 능력을 중요하게 이야기하는데, 사실 동양고전은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다뤄 왔습니다. 이를테면 <논어>가 관계의 예절을 고민했다면, <한비자>는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현실적 장치를 고민했습니다. 이 책은 그 차이를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게 보여 줍니다. 그래서 단순히 “한비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수준이 아니라, 왜 사람에게 규칙이 필요한지를 생활 속 사례로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지나치게 훈계조로 흐르지 않아 읽는 부담도 적습니다.
이 책은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 갈등이나 친구 관계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 혹은 감정적으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아이들에게 꽤 좋은 질문을 던져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부모님이 함께 읽어도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에게 기준을 세워 주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열 살, 명심보감을 만나다> 같은 작품과 함께 읽으면 동양고전이 각각 인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규칙 없는 사랑은 쉽게 무너지고, 사랑 없는 규칙은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