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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닝 - 끝없이 나를 타인에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잉그리드 클레이튼 지음, 최시은 옮김, 김현수 감수 / 센시오 / 2026년 5월
평점 :

<포닝>은 우리가 흔히 ‘성격’이라고 오해해온 반응이 사실은 생존 전략일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 잉그리드 클레이튼은 임상심리학자로서 복합 트라우마와 관계 트라우마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이며, 번역은 고려대 심리학 전공의 번역가 최시은이 맡아 전문성과 가독성을 모두 확보했습니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교수 김현수의 감수를 통해 국내 독자에게도 현실적인 맥락으로 전달됩니다. 이 책은 ‘투쟁·도피·경직’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네 번째 반응인 ‘순응(fawning)’을 중심 개념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책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순응을 단순한 약점이나 자존감 부족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태도였습니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갈등을 회피하며, 스스로를 축소하는 행동은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신경계의 결정”이라는 해석이 제시됩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애착이론이나 폴리베이걸 이론에서 말하는 ‘안전 추구 반응’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순응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었고, 그 전략이 과도하게 고착된 상태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트라우마 반응은 이상적인 판단이 아니라 본능적인 시도”라는 구절이 유독 눈에 들어왔는데요. 이 책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전환이 ‘도덕적 평가 → 기능적 이해’로의 이동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종종 “왜 그렇게까지 했지?”라고 자책하지만, 이 책은 질문을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로 바꾸라고 제안합니다. 이 미묘한 질문의 변화가 자기 이해의 깊이를 완전히 바꿉니다. 이는 임상 현장에서 말하는 자기연민(self-compassion)의 출발점과도 일치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인간관계에서 불필요하게 과잉 배려를 하거나, 갈등을 미루는 선택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좋은 태도’라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불안과 긴장 속에서 선택된 반응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런 행동을 단순히 후회할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보호하려 했던 전략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제는 그 전략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다음 단계라는 점도 명확해졌습니다.
<포닝>은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트라우마와 관계 패턴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려는 독자에게 특히 유익한 책입니다. 타인의 기대에 과도하게 맞추며 살아온 사람, 관계에서 ‘나’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 혹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줍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변화가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점에서, 꽤 조용하지만 강력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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