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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 - 문학과 예술이 태어난 곳으로 떠나다
김경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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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문 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는 여행기를 가장한 사유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김경한 작가님은 오랜 언론인 경력을 바탕으로 세계 여러 도시를 직접 밟으며, 장소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질문이 남겨진 자리’로 읽어냅니다. 이 책은 “왜 사는가”라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물음을, 구체적인 공간과 감각 위에 다시 세워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저는 ‘장소-시간-사유’의 삼중 구조가 무척 흥미로웠는데요. 예컨대 히말라야에서 카프카의 고독을 떠올리거나, 뉴올리언스의 재즈를 통해 재난 이후의 회복력을 읽어내는 방식은 단순한 연상이 아니라, 공간이 인간의 내면과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지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장소성(place identity)’의 전형적인 사례인데, 작가님은 이를 문학적 감각으로 풀어내며 학문적 개념을 자연스럽게 체화시킵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사라진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시간은 과거로 흘러가 사라지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장소에 퇴적되어 현재를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합니다. 이는 앙리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개념이나,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와도 은근히 맞닿아 있습니다. 즉,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남는다는 해석이죠. 이 지점에서 독자는 여행을 통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책을 통해 저는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유명 관광지의 정보나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곳에 축적된 인간의 고민과 선택, 실패와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삶 역시 하나의 ‘읽힐 수 있는 텍스트’로 바라보게 만드는 태도도 배웠습니다. 말 그대로, 여행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는 셈입니다.
저 역시 체코 프라하를 여행하며 비슷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흔히 ‘동유럽의 낭만’으로 소비되는 도시지만, 막상 그 거리를 걸어보면 단순한 아름다움보다도 묘한 정적과 고독이 먼저 다가옵니다. 특히 프란츠 카프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시가지 일대에서는, 그의 작품 속 불안과 소외가 단순한 문학적 상상이 아니라 그 시대와 공간에서 길어 올려진 감정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변신>이나 <심판>에서 드러나는 부조리한 세계는 프라하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제국의 경계에 놓인 정체성의 혼란과 개인의 무력감—와 자연스럽게 겹쳐 보입니다. 이런 경험은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특정 공간에 축적된 인간의 내면을 읽어내는 과정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 책은 특히 ‘생각하는 여행’을 원하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문학·예술·역사에 기본적인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더 깊이 즐길 수 있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은 사람에게도 적합합니다. 반대로 가볍고 빠른 정보 중심의 여행서를 기대했다면 조금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있는 여행책을 원하는 분이라면, 이 책에 아마도 푹 빠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