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의 영화 - 시간과 공간의 미로
나리만 스카코브 지음, 이시은 옮김 / B612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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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20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시적 영화 언어를 구축한 감독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이러한 감독의 세계를 분석한 나리만 스카코브 작가님의 연구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영화학적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인 나리만 스카코브 작가님은 스탠포드 대학 슬라브어문학 조교수로서 러시아 문화와 영화 연구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번역을 맡은 이시은 작가님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와 KAIST MBA를 졸업한 후 다양한 인문 교양서를 번역해 온 전문 번역가입니다. 특히 타르코프스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때 문학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의 아버지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맥락을 설명해 줍니다. 영화사적으로 보면 타르코프스키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나 프랑스 누벨바그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영화의 시적 가능성’을 확장한 감독으로 평가되며, 이러한 흐름은 헤르만 헤세의 문학이 개인의 내면과 영적 탐색을 탐구했던 것과도 일정 부분 공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핵심 구조를 ‘시간과 공간의 일탈’이라는 개념으로 읽어낸다는 점입니다. 나리만 스카코브 작가님은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 <희생>에 이르는 일곱 편의 장편영화를 각각 꿈, 환영, 환상, 기억, 계시, 회상, 망상이라는 모티프로 분석합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시간은 결코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체험, 미래의 환영이 서로 얽히며 관객을 일종의 ‘시간의 층위’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저는 특히 <거울>을 처음 보았을 때 서사가 명확히 이어지지 않는 듯한 장면들이 오히려 기억의 구조를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은 그러한 체험을 이론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롱테이크와 비논리적인 컷, 모노크롬과 컬러의 혼합, 그리고 공간을 비워 두는 독특한 사운드 사용 등이 단순한 미학적 장치가 아니라 관객의 시간 인식을 흔드는 장치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줍니다.


 





개인적으로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시절 영화이론 강의에서 <스토커>를 보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왜 이렇게 느리고 설명이 없는 영화일까”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 다시 보면서 깨닫게 된 것은 그의 영화가 사건을 전달하는 서사가 아니라 ‘사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경험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나리만 스카코브 작가님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단순히 난해한 예술 영화가 아니라 기억과 신앙, 종말론적 상상력, 러시아 시 전통, 그리고 동방 정교회의 이미지 체계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문화적 텍스트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감독의 저서 <시간 속의 조각>을 참고하여 그의 시간 철학을 분석하는 부분은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작품 해설서가 아니라 하나의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 꿈과 환영, 기억을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라 시공간 구조를 분열시키는 장치로 보는 해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는 들뢰즈가 말한 ‘시간 이미지’ 이론과도 일정 부분 연결되며, 동시에 러시아 문학의 사색적 전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예컨대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 등장하는 물, 불, 폐허와 같은 이미지들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독자는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사유 체계로 읽을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단순히 영화 감상을 위한 입문서라기보다 영화이론이나 예술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특히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이미 접해 본 독자라면 자신의 감상 경험을 보다 깊이 있게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아직 그의 영화를 접하지 않은 독자라 하더라도 영화 예술이 시간과 기억, 존재의 문제를 어떻게 탐구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영화학이나 인문학적 예술 연구에 관심이 있는 독자, 혹은 <시간 속의 조각>과 같은 감독의 사색적 저술을 흥미롭게 읽은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남기는 느리고 깊은 여운처럼, 이 책 역시 영화 예술이 무엇을 사유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연구서라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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