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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탄생 - 량치차오의 국민국가 건설 분투기
정지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6년 1월
평점 :
#량치차오 #중국전문연구서 #국민국가건설 #중국의탄생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국의 탄생>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전제하는 ‘중국’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사상사의 차원에서 집요하게 추적한 연구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지호 작가님은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한 뒤,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중국 근현대사 연구자입니다. 그동안 중국 상공업사, 역사 인식, 근대 전환기에 관한 다수의 저작과 번역서를 통해 학계에서 탄탄한 연구 성과를 축적해 온 연구자답게, 이 책에서도 방대한 사료와 정교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밀도 높은 분석을 보여줍니다.

이 책이 주목하는 핵심 인물은 청말의 사상가 량치차오입니다. 정지호 작가님은 량치차오를 단순히 ‘보황파’ 혹은 ‘온건한 개량주의자’로 분류해 온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그를 근대 중국 국민국가 구상의 핵심 설계자로 재조명합니다. 특히 전통적 ‘천하’ 질서 속에서 존재하던 중국이 어떻게 ‘국민국가’라는 새로운 정치적 실체로 전환될 수 있었는지를, 량치차오의 역사관·경제관·재정 개혁론·제국론·국성론을 통해 입체적으로 분석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국명 자체가 근대적 산물이며, 민족·영토·국민이라는 범주가 사상과 제도를 통해 구성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지점은 먼저 량치차오의 역사 서술을 ‘국민 양성의 도구’로 해석한 부분입니다. 그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국민을 만들어내는 계몽의 장치로 이해했습니다. 이는 일본 메이지 시기 국가주의적 역사 교육이나, 유럽에서 민족사가 형성되던 과정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리고 경제·재정 개혁을 국민국가 형성의 핵심 요소로 다룬 점도 흥미로웠는데요. 량치차오는 군사나 왕조의 정통성보다 ‘국민경제’를 국가 존망의 기준으로 보았는데, 이는 도덕과 문명을 중심으로 국가를 이해하던 전통 중국 사상과 분명한 단절을 보여줍니다. 국적법과 동북지역 조선인의 법적 지위 문제를 다룬 장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는 중국사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민족·국적 개념의 유동성을 함께 사고하게 만드는 대목으로, 근대 동아시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수확은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얼마나 인위적이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발명품인가를 체감하게 해 준다는 점일 것입니다. 량치차오가 제시한 국성론이나 중화민족론은 혈통이나 본질에 기대지 않고, 교육·제도·자각을 통해 형성되는 국민을 상정합니다. 이는 근대 유럽의 시민 개념이나,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된 공동체’와도 조심스럽게 연결해 볼 수 있는 지점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사유가 오늘날 중국의 국가주의 담론 속에서 어떻게 재소환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과거사 연구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습니다.
<중국의 탄생>은 중국 근대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보다는, 이미 청말·민국 시기나 동아시아 근대 전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독자에게 특히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중국의 내셔널리즘, 국민국가 형성, 제국의 해체와 재구성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 혹은 오늘날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사상적 뿌리를 짚어보고자 하는 교양 독자라면 이 책에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이미 완성된 국가가 아니라, 여전히 ‘형성 중인 프로젝트’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매우 설득력 있는 사유의 안내서가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