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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종
이재찬 지음 / 9월의햇살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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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인종>은 범죄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독자를 단순한 추리의 쾌감으로 안주시켜 주지 않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저자 이재찬 작가님은 영화 시나리오로 등단해 소설로 영역을 확장한 작가로, 장르적 완성도와 함께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서사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특히 『펀치』와 『안젤라 신드롬』을 통해 사회적 폭력과 인간의 윤리를 날카롭게 묘사해온 작가님답게, <살인종> 역시 ‘누가 범인인가’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둡니다.

소설은 자살로 종결된 사건들의 사진이 형사 하과장에게 전달되면서 시작됩니다. 자살과 타살의 경계, 기억과 망상의 경계, 인간과 짐승의 경계가 흐릿하게 겹쳐지는 구조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느껴지는 도덕적 불안과도 닮아 있습니다. 범죄의 외형은 단순하지만, 그 동기를 따라가다 보면 정의·복수·죄책감이 서로를 잠식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수사는 논리의 축적이 아니라, 기억의 침잠에 가깝습니다.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사진’이라는 매개입니다.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말했듯 사진은 죽음을 예고하는 매체입니다. <살인종> 속 사진 역시 증거라기보다 일종의 고백문에 가깝습니다. 말하지 못한 죄, 침묵 속에서 봉인된 과거가 사진이라는 무언의 기록으로 되돌아옵니다. 이는 최근 한국 느와르 소설에서 보기 드문 장치로, 사건보다 인물의 시선을 중심에 두는 서사의 밀도를 높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선과 악의 비가역성’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교정 가능한 인간형이 아닙니다. 체사레 롬브로소의 범죄인류학을 떠올리게 할 만큼, 작가는 연쇄 살인범을 ‘다른 종’에 가깝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타자화하는 순간, 독자는 불편한 질문과 마주합니다. 과연 그 짐승성은 우리와 무관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과장 역시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살인종>은 치밀한 트릭이나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보다는,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와 인간 심리 소설을 함께 즐기는 독자에게 적합한 작품입니다. 김언수의 <설계자들>이나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던 독자라면 이 작품의 건조한 문체와 불편한 세계관에 충분히 매혹될 것입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위로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신, 책장을 덮은 뒤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우리는 과연 인간으로만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짐승의 얼굴을 한 채 일상을 통과하고 있는가’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