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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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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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은 일본 현대문학에서 관계의 윤리를 가장 섬세하게 탐구해 온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작가님은 1980년대 후반 데뷔 이후, 사랑과 고독, 일상의 온도를 절제된 문장으로 길어 올리며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해 왔습니다. 이 작품은 알코올 중독과 조울증을 앓는 아내 쇼코, 게이 남편 무츠키, 그리고 그의 연인 곤이라는 비전형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자극적인 설정과 달리 소설의 결은 매우 담담합니다.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 특유의 청아한 문체는 인물들의 삶을 특이한 이야기가 아닌 살아가는 방식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랑의 증명이나 완성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쇼코와 무츠키는 서로를 속이거나 억압하지 않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지만, 그 결혼은 사회가 기대하는 안정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은 결혼을 제도의 틀로 고정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을 보호하거나 때로는 소모시키는 장치로 그려 냅니다. 이는 근대 일본 문학에서 반복되어 온 가족 서사와 비교해 보았을 때, 혈연과 역할 중심의 가족 개념을 조용히 비껴서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제도보다 관계의 실제 감정과 합의가 중요하다는 관점이 작품 전반에 스며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평범함에 대한 집요한 질문입니다. 소설 속에서 부모와 의사, 사회는 끊임없이 인물들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려 합니다. 결혼 다음에는 출산, 그 다음에는 더 완벽한 가족이라는 식의 요구가 이어지지만, 작중 인물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작가님은 이들을 은사자라는 비유로 설명하며, 다수의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얼마나 쉽게 소모되고 배제되는지를 은근히 드러냅니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정상성의 규율이나,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과 유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미덕은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에 있습니다. 쇼코의 병, 무츠키의 정체성, 곤의 위치는 모두 불안정하지만, 소설은 끝내 이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 사람의 일상은 정리된 부엌, 함께 나누는 대화, 조용한 배려 속에서 잔잔하게 이어집니다.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은 반드시 소유와 독점으로 증명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됩니다.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태도의 정직함에서 찾는 점이 이 소설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은 전통적인 연애 서사나 가족 서사에 피로를 느낀 독자, 혹은 관계의 다른 가능성을 문학적으로 사유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특히 권할 만한 작품입니다. 또한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문체를 오래 사랑해 온 독자라면, 이 소설이 지닌 절제와 투명함이 왜 지금까지도 유효한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남기며, 그 질문은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독자의 삶 곁에 머뭅니다. 어쩌면 이 소설이 반짝이는 이유는, 눈부신 결론이 아니라 그 조용한 여운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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