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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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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충전200카페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의 작품 세계 가운데서도 유독 이질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책입니다.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법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한 베르베르 작가님은, 과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질문을 결합한 서사로 세계적인 독자층을 형성해 온 작가입니다. 『개미』, 『타나토노트』, 『신』 시리즈 등 장편 서사에서 보여주던 거대한 세계관과 달리, 이 책은 한층 사적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읽는 행위 그 자체’를 하나의 여행으로 재구성합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책이 화자가 되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다는 형식 실험입니다. 독자는 더 이상 서사의 바깥에 머무는 관찰자가 아니라, ‘그대’라는 호명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놓입니다. 이는 이탈로 칼비노의 『어느 겨울 밤 한 여행자가』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베르베르 작가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의 상상력 자체를 서사의 동력으로 삼습니다. 공기·흙·불·물이라는 4원소의 세계는 고대 자연철학의 틀을 빌리되,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하며 독자의 감정과 기억을 자연스럽게 환기합니다.

특히 공기의 세계와 흙의 세계가 보여주는 대비는 인상 깊습니다. 공기가 자유와 비상의 이미지라면, 흙은 정착과 안식의 감각을 불러옵니다. 이는 플라톤적 이데아의 상승과 아리스토텔레스적 현실 감각 사이의 긴장을 연상시키며, 인간이 삶에서 반복적으로 오가는 두 방향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불의 세계에서 제시되는 ‘싸움’ 역시 외적 갈등이라기보다 자기 내부의 저항과 두려움으로 읽히며, 물의 세계에서는 생성과 순환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사유로 독자를 이끕니다.

이 책의 강점은 난해한 철학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 태도에 있습니다. 베르베르 작가님은 개념을 해설하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체험하도록 문장을 배치합니다. 명상서나 자기계발서와 닮은 면모가 있으면서도, 그것이 교훈이나 결론으로 수렴되지 않는 점에서 문학적 여백을 유지합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자신의 내면을 점검하는 사적인 사유의 시간을 얻는 동시에 ‘읽는 행위란 무엇인가’라는 메타적 질문까지 함께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서사적 긴장이나 극적인 사건을 기대하는 독자보다는, 사유의 속도를 늦추고 싶은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해외 장편소설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이 작품이 베르베르 작가님의 세계관을 축소판처럼 응축해 보여주는 실험적 텍스트임을 느끼실 것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통해 잠시 다른 차원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 혹은 문학이 여전히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분께 조용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