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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전 시집 -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탄생 100주년 · 서거 70주년 기념 시집
박인환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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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박인환 전 시집>은 흔히 몇 편의 명시로만 기억되던 박인환을 ‘한 사람의 시인’으로 다시 세워 놓는 책입니다. 전후 서울의 거리, 술집과 다방, 영화관을 배경으로 한 도시적 감수성은 이미 익숙하지만, 이 전집은 그 이미지 뒤에 가려졌던 사회 참여, 전쟁 체험, 여행의 시선까지 한꺼번에 펼쳐 보입니다. 단순히 추억을 자극하는 시집이 아니라, 왜 이 시인이 지금 다시 읽혀야 하는지를 차분히 설득하고 있습니다.

박인환 작가님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도시 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감각화한 시인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상 이후, 전쟁 이후라는 단절의 시간 속에서 그는 개인의 상실과 사회의 불안을 도시인의 언어로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목마와 숙녀」는 전후 도시인의 허무와 감정을 상징적으로 응축한 작품이고, 「세월이 가면」은 사랑의 상실을 과장 없이 응시하는 태도로 오래 기억됩니다. 이 두 작품은 감상적이라는 오해를 받아 왔지만, 실은 감정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한 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 전집의 강점은 미수록 작품과 산문, 영화평론까지 함께 실었다는 점입니다. 시를 6부로 나눈 주제별 구성은 박인환 작가님의 시 세계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변화와 확장의 과정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사회 참여적 시편에서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전쟁과 가족을 다룬 시에서는 소시민의 균열이, 여행과 이국의 시에서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이동이 드러납니다. 이는 한국 모더니즘이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현실 대응 방식이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환기합니다.

박인환 작가님의 센티멘털리즘은 낭만적 퇴행이라기보다 전후 현실을 감당하기 위한 미학적 전략에 가깝습니다. 감정을 제거한 리얼리즘도, 이념으로 환원된 참여시도 아닌 지점에서 그는 ‘도시인의 정서’를 기록했습니다. 이 전집을 통독하면, 그의 시가 허무에 머문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감각을 유지하려는 태도였다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시가 삶을 미화하지도, 설교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대적인 독해가 가능합니다.
시를 좋아하지만 전문 연구서까지는 부담스러운 교양 독자, 한국 현대시를 한 번 제대로 정리해 보고 싶은 분들께 특히 이 책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몇 편의 명시만 알고 있던 독자라면, 박인환 작가님의 시가 훨씬 넓고 단단했다는 사실에 꽤 놀라실 겁니다. 요컨대, 이 책은 “박인환을 아는 것 같았는데, 사실은 잘 몰랐구나”라는 깨달음을 주는 전집입니다. 명동의 밤은 낡았지만, 그 감정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